▲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사진 왼쪽)와 콤모두스, 코펜하겐 칼스버그 미술관
박찬운
재미있는 것은 콤모두스의 어머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처인 포스티나는 정조 관념이 희박한 여자로 알려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콤모두스가 과연 아우렐리우스의 친자인지 의심을 한다. 그럼에도 아래의 두 초상화 조각에서 많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그것은 두 가지 가정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콤모두스가 아우렐리우스의 친자식으로 진짜로 두 사람의 용모가 비슷했을 것이라는 가정이다. 작가는 그것을 그대로 그렸고, 그러니까 두 개의 조각품이 닮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둘째는 콤모두스가 친자가 아니었을 가정이다. 그 경우 두 사람의 용모는 상당히 달랐을 텐데, 어떻게 두 조각품이 부자 사이로 보일 정도로 비슷해졌을까. 그것은 작가에게 콤모두스를 친자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황제와 그 자식을 다르게 그리면 그 결과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온전히 살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혹은, 황실로부터 처음부터 두 사람이 닮은 것처럼 만들라는 요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 요구는 누가 했을까. 당연히 아우렐리우스보다는 요부 포스티나가 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로마시대의 도덕관념으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가정이다. 어디에 해당할까? 이것을 아는 이는 사실 아무도 없다.
로마의 초상화가 항상 인물의 실제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었다. 어떤 초상화도 사진이 아닌 바에야(사진도 조작이 가능하다!) 그리는 목적에 따라서 실물과 차이가 난다. 로마황제의 초상화는 대부분 정치적 목적에서 만들어졌을 테니 실물에 가까운 경우라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대부분은 신민에게 위엄을 보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 과장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위에서 본 트라야누스의 초상화도 위엄을 보이기 위해 어딘지 모르게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얼굴 인상이 강인하고, 몸은 마치 운동선수처럼 군살 없이 다부지다. 설마 황제가 이런 몸을 만들기 위해 온갖 운동과 다이어트를 했겠는가.
또 다른 복잡한 이유에서도 로마황제의 초상화는 실물과 다르게 표현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연인과 비교되는 황제의 얼굴을 그릴 때는 그 연인과 짝을 맺을 정도의 과장된 아름다움이 작가에게 요구되었을 것이다.
팍스로마나의 진정한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그가 사랑한 미소년 안티노우스오현제 중의 한 사람 하드리아누스(재위기간 AD 117~138)의 초상화가 대표적이다. 하드리야누스는 트라야누스 다음 황제인데, 그 또한 트라야누스와 마찬가지로 스페인 출신이었다. 하드리아누스가 통치한 이 시기는 로마제국 역사상 최정점의 시기였다. 그는 팍스 로마나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하드리야누스는 선제가 만들어 놓은 국경선을 확실하게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한 황제다. 그래서 그는 황도 로마에 있는 날보다 길바닥에서 세월을 보냈다. 제국 전체를 쉬지 않고 여행한 것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과 로마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각종 기념물을 만들었다. 지금도 지중해 곳곳에 남아 있는 하드리아누스의 문이나 도서관은 바로 그가 여행 중에 남긴 건축물이다.
그런데 이 황제는 당시 안티노우스라는 미소년을 사랑했다고 한다.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그는 안티노우스를 너무나 사랑해 제국 순행에 항상 동반했다. 그러다가 이집트를 순행하던 중 나일강에서 안티노우스가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게 단순 사고사인지 아니면 자살인지 말들이 많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이는 안티노우스가 자신이 나이를 먹으면 황제가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자살했다고 한다. 일리 있는 가정이다.
여하튼 안티노우스는 익사했다. 그렇게 되자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위해 이집트에 도시(안토니노폴리스)를 만들고 그를 신격화했다. 안티노우스는 죽은 후 신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가 회자되는 하드리아누스가 안티노우스와 함께 초상화를 만들었다면 어떤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미소년의 얼굴과 어울리는 정도로 만들어야만 하지 않았을까.
아래 그림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