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벽화는 없지만, 계단옆에 손잡이가 있어서 그런지 정답게 느껴지는 언덕배기길.
김종성
몇 년 전 중장년층의 서울 시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였던 동대문 운동장이 무슨 플라자를 만든다며 철거되었다. 당시 오세훈 서울 시장에게 동대문 운동장에서의 개인적인 추억이 있었다면 (기억이 아닌) 흔한 기념비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무참히 없애지는 않았을 것이다. 삭막한 고수부지로 둘러싸인 서울의 한강도 마찬가지. 전두환 군사 정권의 권력자들에게 한강에 대한 소소한 추억들이 있었다면 그리 아름다웠다는 강변의 둔치를 모두 콘크리트로 바르진 못했을 거다. 추억은 그렇게 힘이 세다.
이 계단도 그렇고 주변 골목들도 그렇고 언젠가부터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벽화가 있을 법도 한데 그림 한 점 없다. 달동네, 언덕동네의 쓸쓸함을 달래주기도 하는 벽화 그림들이 굳이 필요 없다는 의미일까. 노약자를 위한 손잡이가 있는 언덕 골목들이 친숙하면서도 마음 짠하게 다가온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각기 다른 감성을 갖게 하는 게 골목이다. 어떤 이에겐 남루하게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겐 정겨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골목이 없는 도시는 추억이 없는 사람처럼 무미건조하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
골목마다 어지럽게 들어선 전봇대와 전깃줄은 이웃간의 긴밀한 교류를 상징하는 듯하고, 어느 집 붉은 벽돌 담장 위에 방범용으로 만든 뾰족한 쇠 가시 마저도 정답다. 언덕동네에 웬 고급스럽게 보이는 주택들이 지어져 있나 했더니, 가까이에 인왕산과 수성동 계곡이 있는 등 경관이 수려한 옥인동엔 옛부터 부호들의 집들이 많았단다.
옥인동의 보물, 언덕배기 위 낭만 종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