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8일 새벽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AP=연합뉴스
북한이 미국에 대해 '선제핵타격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하자, 한국 국방부는 그럴 경우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국방부가 북한이 도발하면 '지휘세력'까지 응징하겠다고 하자, 북한은 "그 순간에 가증스러운 대결과 반역의 소굴인 청와대가 산산이 박살나고 불바다 천지가 될 것"이라며 맞섰다.
3월 11일 시작하는 '키 리졸브' 군사훈련이 고비
이 정도면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평화외교는 사라지고 전쟁위협만 난무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런 극렬한 발언의 교환은 긴장의 최고점이 아니다. 당분간 남북한은 더 거친 말 공방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말로만 끝나지 않을 수가 있어서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
오는 3월 11일부터 21일까지 실시되는 '키 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북한은 '노골적인 군사도발 행위'라고 했다. 한미양국은 이 기간에 북한이 도발하면 "사정 없이 응징하겠다"고 강력 경고했다. 말로만 그칠 거 같지 않다. '키 리졸브' 훈련기간에는 미국의 핵잠수함까지 참여하여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예정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시위로 맞설 것이다. 긴장의 최정점을 향해 한반도 정세가 치닫고 있다. 성냥불 하나에도 삽시간에 불기둥이 생길 것 같은 조짐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1961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무기는 인류에게 다모클레스의 검"이라고 말했다. 왕의 의자 위쪽에 한 올의 머리카락에 매달려 있는 한자루의 검, 그 검은 왕권에 대한 위협이다. 긴장이 고조되는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국민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협하는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검'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유엔결의안은 더욱 강력해졌다.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채택된 '유엔 안보리결의안 2094'는 회원국들에게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의무화했다. 지금까지 결의안들은 권고 수준이었다.
북한의 반발도 더 강도가 세졌다. 북한은 '핵선제타격권리 행사',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불가침 합의 전면 무효화', '제2의 조선전쟁'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북한의 주장을 살펴보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폐기하겠다는 것이다.
국민행복 위협하는 극렬한 언어의 교환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는 수많은 위기를 겪었으나 지금처럼 극렬한 언어의 교환은 처음이다. 전쟁을 부르는 발언들이다. "대포가 쌓이면 터진다"는 서양속담이 있다. 말의 위협에 의한 긴장고조도 마찬가지이다. 우발적 충돌이라도 발생하면 평상시보다도 전쟁의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최근 조성된 정세는 북핵갈등 20년이 역사속에서 반복되어왔던 '위기-대화-합의-파탄-위기'의 패턴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소지가 있다. '위기' 이후 대화를 복원할 수 있는 '신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만 상할 대로 상해 있다.
또 6자회담 참가국가들의 리더십이 변화한 상황이다. 위기 후에 대화를 복원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아직까지 국가안보관련 주요 관계자의 인선이 마무리 되지 않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공식 소집할 수도 없다.
미국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할 주요 실무책임자들이 교체기에 있다.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팔을 겉어붙이고 나설 사람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오바마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불신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김정일-김정은 체제에 항상 뒤통수만 맞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의회가 북한에 대해 가지는 인식은 민주-공화 가릴 것 없이 극우파에 버금간다.
핵과 미사일 능력강화하고 정전체제 흔드는 북한북한의 위협이 '다종화', '고강도'로 변화한 것도 상황을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종화란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와 '정전체제 흔들기' 등 다양한 위협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고강도란 '핵선제공격', '제2의 조선전쟁' 등 과거보다 훨씬 더 섬뜩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과거 한반도에서 있었던 어떤 위기상황보다도 긴장이 더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의 선군정치에서 김정은 시대에는 당군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다. 당 중심의 구조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이 과정에서 밀린 북한 군부를 다시 전면에 불러내고 있다. 전면에 나선 북한군이 다종화된 고강도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면 추측하건대 그들은 숨도 못 내쉬는 지경일 것이다. 걷잡을 수 없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내달리고 있는 이유이다.
1990년대에도 북한이 '정전체제 흔들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정전협정을 차근차근 무력화시키는 전술을 구사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은 △기구 △선과 구역 △규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협정을 관리하는 '기구'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중립국감시위원회이다. '선'과 '구역'이란 군사분계선(MDL)과 비무장지대(DMZ)이다. '규칙'이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정전협정에서 명시하고 있는 각종 조항들이다.
정전협정 60주년에 전시상태로 복귀1990년대에 북한의 정전협정 흔들기는 먼저 '기구'를 무력화하는데서부터 시작했다. 먼저 군사정전위원회를 부정하고 1994년 5월에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설치했다. 1995년까지 중립국감독위원회를 철수시키는 등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정전협력을 무력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다음단계로 '선'과 '구역'을 부정했다. 1996년 4월 4일에는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에 의한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유지 및 관리와 관련한 임무를 포기하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과 비무장지대(DMZ)를 출입하는 인원과 차량의 식별표지를 하지 않겠다"며 사실상 'DMZ 불인정'을 선언했다.
이후 1996년 4월 5일부터 7일 사이에는 무장병력 총 470여명을 판문점 지역에 투입하여 무력 시위를 했다. 정전협정의 '규칙'을 무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