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월 24일 개성공단 안 의류제조업체인 신원 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김태경
지난 7일 오후 서울 중랑구에 있는 한 의류 봉제 공장.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4층에 마련된 50평 남짓한 작업장 안에는 그 흔한 전자동 기계 하나 없이 직원 20여 명이 오직 재봉질에 매달려 있었다. 10대 여공들만 없었을 뿐 1970년대 청계천 봉제 공장을 연상시키는 풍경이었다. 이들이 국내 섬유·의류업계에선 거의 자취를 감춘 마지막 '수출 역군'이란 점까지도.
실제 이들이 만든 여성 니트를 비롯한 옷들은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된다. 정성조 두일교역 전무는 "연간 수출 규모가 1500만 달러(약 160억 원)에 이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미국 수출도 10% 정도 늘었다"고 자랑했다. 이 업체의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이 70%에 달하지만 대부분 의류 업체는 중국과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공장을 옮겨 'FTA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 성공 사례'로 꼽힌 기업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섬유·의류업계, 국내 생산 적어 FTA 체감 못해... "바이어만 이득"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해 6월과 9월 한미FTA 중소기업 성공 사례를 연달아 발표했다. 지난해 3월 15일 한미FTA 발효 즉시 2~10% 수준의 관세가 철폐되는 자동차 부품과 섬유·의류·신발 등이 대표적 수혜 품목으로 꼽혔다.
특히 여성 원피스의 경우 11.5~14.9%에 이르던 관세가 한꺼번에 사라져 혜택 폭이 상당히 컸다. 당시 코트라는 여성의류 90%를 미국에 수출하는 누리안인터내셔널을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누리안인터내셔널 관계자는 지난 6일 "한미FTA로 미국 수출이 많이 늘어날 걸로 예상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며 "미국 바이어(수입업자)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국내 봉제 생산 능력이 안 돼 주문을 해도 물건을 댈 수 없었다"고 밝혔다.
누리안의 경우 국내 공장은 3곳 뿐이고 90% 이상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이 관계자는 "10% 넘게 관세 혜택을 받더라도 베트남 공임이 워낙 싸 영향을 미칠 수준은 아니다"라며 "당분간 국내 공장을 늘릴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 국내에서 의류 완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고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해 FTA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중견 니트 의류 수출업체인 최신물산 사정도 비슷했다. 백미희 최신물산 차장은 "국내 생산은 10%뿐이고 대부분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인건비를 따지면 국내 공장을 늘려봐야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의류 수출업체인 명성텍스 박영순 전무 역시 "주로 유럽에 수출해 미국 수출 비중은 높지않지만 국내 공장이 없어 관세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에서 생산하려해도 인건비 때문에 채산성이 안 맞아 경쟁력이 없다"고 밝혔다.
관세가 지난해 2%포인트 정도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줄어 줄어드는 섬유업계 쪽은 어떨까? 특수 편직물 섬유를 만들어 미국에 70% 이상 수출하는 지텍코리아의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이 90%에 달해 바이어가 추가 주문하고 새 거래처를 확보하는 등 관세 인하 효과를 보고 있다.
반면 부직포·크리너 등 산업용 섬유를 수출하는 웰크론의 경우 미국 수출 비중이 적어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가대현 웰크론 차장은 "대부분 유럽쪽에 수출하고 있고 미국 수출은 10%도 안 돼 한미FTA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국내 공장에서 50% 이상 생산하고 있지만 FTA 전보다 오히려 매출이 줄어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미국에 화학섬유 직물을 수출하는 부미랑코퍼레이션 김태식 이사 역시 "연초에 가격 조정도 있었고 섬유 쪽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분위기"라며 "FTA 이후 매출이 줄었으면 줄었지 늘어난 곳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원산지 사후 검증 불안... 관세 혜택 박탈에 벌금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