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슈테판성당의 위용.
홍성식
저건 쓰레기 소각장이야? 예술품이야? 도심에 있는 시청 건물은 물론, 국회의사당까지 멋들어지기 짝이 없었다. 의사당 분수에 석회암으로 만든 조각상은 그 표정 하나하나가 진짜 사람처럼 섬세했고, 지붕 위의 조각된 마차는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했다. 앞서 언급한 스탕당 신드롬과 유사한 감정이 나를 흔들었다. 시청사의 첨탑 역시 고딕미술의 절정을 과시하고, 심지어 쓰레기소각장까지 모던한 예술품 같았으니.
살풍경한 콘크리트 더미에서 살아온 '서울 촌놈'인 나는 맥이 탁 풀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가장 유명한 두 여자,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가 살았던 쇤브른 궁전의 정원에 이르러선 부러움을 넘어서 감동까지 먹었다. 한국의 오뉴월은 오스트리아에서도 오뉴월. 그날의 더위로 보자면 평소 거의 먹는 경우가 없는 감동이 아니라 냉수를 먹어야 했는데.
사실 나는 오래 전 지어진 성당이나 궁전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보다는 그걸 짓기 위해 흘려야했던 핍박받는 이들의 땀과 눈물을 먼저 떠올리는 '멋없는 인간'이다. 천성이 낭만주의자보다는 설익은 민중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이다.
헌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심지어 프랑스 왕가로 시집가 1789년 혁명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온 매춘부"라 조롱받았던 앙투아네트가 불쌍하다고 느꼈으니. 그녀를 단두대에 올려 목을 자른 프랑스혁명의 주도자들에게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건 대체 무슨 감정의 뜬금없는 기복이었을까?
주말 밤엔 시청사 벽면에 거대한 스크린을 걸고 상영하는 야외 오페라를 봤다. 왜 오스트리아에서 우리가 '클래식'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음악이 탄생했는지 짐작이 갔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제 사연을 떠드는 이 하나 없이 벽면에 투사되는 오페라에 집중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