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별 재형저축 금리 비교
고정미
금융권과 언론의 호들갑은 마치 새 정부가 국민을 위해 과거의 재형저축 지원정책 만큼 기가막힌 인센티브를 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추억의 재형저축', '재형저축의 열기 후끈' 등의 온갖 마케팅 수사들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한다.
실제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사람들의 저축에 대한 동기는 거의 바닥에 닿아 있을 정도다. 그나마 적립식 펀드로 저축 상품의 낮은 금리에 대한 상실감을 만회해 보려 했으나 '투자 성적은 저축만 못하다'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를 판매할 때의 장밋빛 약속에 비해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들도 투자 수익을 챙길 만큼 투자자로서 훈련이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대다수 가계의 펀드 투자 성적은 원금도 못지키고 속만 태우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을 하고 싶어도 저축의 동기가 마땅치 않았음은 분명하다. 정부가 서민 중산층의 저축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재형저축을 되살린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문제는 과거의 재형저축에 대한 기대심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곤란한 재형저축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재형저축은 법정장려금이나 임의장려금과 같은 보너스 금리가 없다. 은행 자체적으로 3년 동안 다른 적금 상품에 비해 높은 이자율을 고정적으로 보장해 주는 수준이다. 대체로 4%대 초반의 고정 이자율을 약속한다. 기간은 7년 장기 상품이 전부이고 만기시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납입기간 동안 소득공제 혜택은 없다. 바로 이것이 되돌아온 재형저축의 초라한 인센티브다.
따지고 보면 2010년 1월에 소득공제 혜택이 폐지된 장기주택 마련저축 상품만도 못한 조건이다. 특히 과거의 재형저축은 가입기간이 다양해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었다. 단기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가정이라면 1년 혹은 3년짜리를 선택할 수 있었고 그보다 좀더 많은 법정장려금을 챙기면서 자산형성을 목적으로 한다면 장기 상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장기 상품 한가지 뿐이다.
가정 경제 유동성에 보탬이 될까전체 가구의 60%이상이 빚을 갖고 있고 저축이 부족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가계가 유동성이 취약한 상태임을 말해준다. 가계 유동성이 취약해지면 작은 외부 충격에도 가정 경제가 큰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령 가족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리거나 소득 감소 혹은 소득이 중단되는 것과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될 경우를 가정해 보자. 기존 부채 이자와 병원비 혹은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돈은 계속 필요하다. 저축해 놓은 비상금이 최소한 3개월치 가량 준비되어 있다면 긴축재정을 통해 버텨가며 문제해결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상 예비자금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카드를 돌려 쓰고 고금리 악성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미 다중 채무자들의 상당수는 이런 갑작스러운 변수들로 인해 빚이 시작되고 악성화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저축률이 낮다는 것은 다수의 가계가 잠재적 다중 채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동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축을 독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유동성이란 말 그대로 언제 어느 때 필요하게 될지 모를 여유자금의 형태이므로 장기 상품은 오히려 유동성을 위협할 수 있다. 돈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중도 해지 하면 되겠지만 그럴 경우 비과세혜택은 포기해야 한다.
결국 정부가 요란하게 내놓고 있는 재형저축은 현재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계 현실에 맞는 저축 독려 프로젝트가 아닌 셈이다. 과거의 재형저축과 같이 단기 상품으로 설계하고 그에 따른 법정 장려금을 조금이라도 보태주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어야 한다.
게다가 다소 위험한 것은 재형저축 펀드도 있다는 점이다. 펀드를 저축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불완전 판매가 걱정이다. 급할 때 중도해지 해서라도 꺼내 쓰려고 보니 저축이 아니라 펀드 상품이었고 게다가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난감한 상황에 몰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도 이런 경우를 당한 소비자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재형저축을 가입하려면 반드시 저축의 형태인지 펀드 투자인지 분명히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재형저축의 추억으로 형성되는 막연한 기대심은 아예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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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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