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곡사로 향하는 진입로의 소나무들이 모두 V자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송진공출을 위해 소나무를 훼손한 흔적이라고 전해진다.
충남시사 이정구
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에는 신라 진성여왕(?~897) 원년인 887년 도선국사(827~898)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천년고찰 '봉곡사'가 있다.
1126년의 역사를 간직한 봉곡사는 도선국사를 비롯해 고려시대 보조국사(1158~1210), 일제시대 만공스님(1871~1946) 등이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머물며 '성호 이익과 실학'을 주제로 열흘에 걸쳐 최고의 학술대회를 개최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는 과거 천년고찰의 명성과 달리 탑 하나 온전히 보전되지 못한 채 주지 자암스님과 사무원, 단 둘이 절을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다산 정약용을 연구하는 학계와 만공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성지순례를 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재 봉곡사에서는 정약용과 만공스님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문헌과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그들의 행적을 추정 할 뿐이다.
이처럼 천년고찰 봉곡사가 보물 하나 온전히 간직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 한국전쟁 등 전란 때문이다. 특히 봉곡사는 일본과 악연이 깊다. 임진왜란 때는 봉곡사가 폐허로 변해 인조 24년에 고쳐 지었고, 고종 7년 서봉화상이 수리해 지금 형태의 봉곡사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절에 내려오던 각종 보물들은 일제 강점기에 강탈당했고, 사찰로 들어서는 길 입구의 소나무 숲까지 일제 수탈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임진왜란에 잿더미...일제강점기 공출위한 수탈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