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술한 병원마다 왜 문을 닫는 건데?

아이 셋 수술로 낳았고, 아이 셋 낳은 그 병원들은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등록 2013.03.03 09:24수정 2013.03.0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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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수술해주시면 안돼요? 제발 수술 좀 해 주세요."
"이런 정도로 수술 안 합니다. 그냥 참으세요."
"선생님, 저 정말 수술해 주세요. 엉엉엉~~~"


그렇게 애원하고 사정해서 첫 아이를 수술로 낳았다, 첫째 아이를 수술로 낳으니 둘째와 셋째 아이도 수술로 낳게 됐다. 그리고 나를 수술했던 의사들은 모두 병원 문을 닫았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아이를 낳기 위한 그 아픔을 내가 견뎌낼 수 있를지 무척 두려웠다. 아이를 낳을 즈음 하늘이 노래지고 온 몸이 부서지는 아픔 후에야 아이가 태어난다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기에 그 아픔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첫 아이를 낳을 때, 새벽 무렵 진통이 왔다. 남편은 출근하고 없었다. 아는 언니에게 전화를 거니  아이가 태어나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한다며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뱃속의 아이가 거꾸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병원에 가도 의사나 간호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며.

잘 자리잡고 있던 아이가 출산이 임박히 거꾸로 자리를 바꾸면서 아이가 제자리를 잡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이래저래 고민이 많던 때였다.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둔 보따리를 들고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언니 말대로 의사가 간호사가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진통의 정도가 어떤지 자궁문은 잘 열리고 있는지 정도만 살펴줄 뿐이었다.

그런데 진통의 강도가 내게는 너무 크게 다가왔다.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는 약과라면서 아직 아기를 낳으려면 멀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고통을 줄이기 위해 애썼지만 죽을 것 같이 아프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거꾸로 있다는 아이도 걱정됐다.


그런 내게 하늘이 노래져야 한다며 아직 아기가 태어나려면 멀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원망스러웠다. 의사는 자궁이 2cm 정도는 열렸는데 더이상 열리지 않는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했다. 엄마가 힘들어하면 아이가 뱃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태변을 누고 그 변을 먹으면 잘못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간호사는 아직 아이을 낳을 정도의 아픔은 아니라며 마음을 편히 먹으라며 타박했다.


그렇게 병실을 차지하고 누워있은지 12시간 정도가 지났다. 계속 되는 아픔은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수준이었고, 뱃속의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점점 커져 갔다. 그때 문득 출산안내서적에서 수술 후 무통주사를 맞으면 아픔이 없다며 비용은 좀 들지만 무통주사를 맞으라던 문구가 생각났다.

그거다 싶었다. 수술하면 마취를 하니 아프지 않을 거고, 수술 후에는 무통주사를 맞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겠구나 싶어 의사에게 수술을 해 달라고 졸랐다.

의사는 수술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이가 거꾸로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수술을 하자고 했다. 수술대에 오르는 순간 두려움은 없었다. 의사가 잘 수술해 줄 것이고 수술 후에는 무통주사를 맞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을 테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수술을 잘 마치고 딸 아이를 만났다. 그런데 내 계산에 착오가 생겼다. 수술 후 의사에게 "저 무통주사 맞아도 되죠?"라고 물으니 "아기 낳은 후에는 맞는 거 아니예요" 하는게 아닌가.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병원에서는 의사가 왕이기에 의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만만치 않았다. 아이를 낳기 전보다 훨씬 아팠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간호사는 자궁수축에 좋다며 묵직한 모래주머니를 가져와 내 배 위에 올려놨다.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의 고통에 배 위에 올려진 모래주머니의 무게까지 더해지니 하늘이 노래졌다.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끙끙 앓다가 1주일만에 퇴원한 후에도 수술 후의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자연분만으로 세 아이를 잘 낳아 키우고 있던 언니는 자연분만 하면 그때만 아프지 후에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키득거렸다.

퇴원 후 시댁에서 아이를 여름에 낳은 탓에 보일러 팍팍 돌리며 땀을 쭉쭉 흘리며 몸조리하던 나는 퇴원 1주일만에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수술 부위에 땀이 들어가면서 염증이 생긴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정도의 아픔쯤은 잘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내가 수술했던 병원이 수술 중 산모가 사망하면서 문을 닫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당시 그 병원은 내가 살던 동네에서 처음으로 생긴 산부인과였고, 나는 그 병원의 첫 수술환자였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무통주사를 맞혀준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배 위에 모래주머니를 올려 놓고 있었다는 산모를 본 일이 없다.

첫째 아이를 수술로 낳은 탓에 3년 후 둘째 아이도 수술로 낳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그리해야 한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첫째 아이를 낳았던 병원이 문을 닫은 후 내가 사는 동네에는 또다른 산부인과가 문을 열었다. 다행히 그 병원에서는 수술 후 무통주사를 맞혀 줬다. 약기운이 몸에 퍼지는 순간부터 고통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서 병실에서 둘째를 품으며 첫아이까지 돌볼 수 있었다. 아이 낳는 고통이 없으니 아이를 열까지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퇴원을 했고 얼마 후 그 병원이 문을 닫았다는 말을 들었다. 수술 후 산모가 쇼크상태에 빠지면서 사망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는 개인산부인과가 아니라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겸하는 제법 큰 규모의 병원이 문을 열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지 3년 후 나는 셋째 아이를 낳기 위해 문을 연지 얼마 안 되는 그 병원을 찾았다. 자연분만을 준비했지만 예정일을 1주일이나 지나고도 거꾸로 있다가 용기없는 엄마로 인해 수술해야 했던 첫째 아이와 수술할 생각으로 수술날짜를 미리 정해 수술한 둘째 아이와 달리 셋째 아이는 예정일보다 일찍 진통이 오면서 새벽녘에 부랴부랴 수술을 했다.

하지만 마음은 훨씬 무거웠다. 첫째 아이나 둘째 아이를 낳을 때와는 달리 수술 중 깨어나지 못하고 다시는 아이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첫째 아이를 낳았던 병원, 둘째 아이를 낳았던 병원 모두 수술한 산모가 사망하면서 문을 닫은 점도 꺼림찍 했다.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날까봐 두려웠다.

주변에서는 세 번째 수술이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말도 했지만 큰 병원으로 갈 용기는 나지 않았다. 큰 병원으로 가면 큰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싶은 마음도 컸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내게도 별 탈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셋째 아이를 낳았던 그 병원에서 수술로 아이를 낳았던 산모가 사망하면서 그 병원이 문을 닫았고, 새로운 의사가 병원을 인수해 병원 이름을 바꿔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가끔 그 생각을 하면 한번씩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웃음도 나온다. 내가 아이을 낳은 병원마다 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지. 어쩌면 나는 문을 닫을 병원에서만 아이를 낳았는지 하는 생각에.

그리고 우리 동네에 네 번째로 이름을 바꿔 문을 연 그 산부인과는 아직껏 이름도 바뀌지 않고 10년 가까이 우리동네 산모들을 지키고 있다.
#제왕절개 #수술 #무통주사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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