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밥 풀기 직전낯선 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박미경
수술 전, 젊은 의사는 수차례 겁나는 말을 했습니다.
"수술하면 헛소리할 수 있고, 실명될 수도 있고, 잘 안 들릴 수도 있어요."
"(웃으며) 네? 지금도 헛소리하는데요?"
의사가 바리캉으로 제 머리카락을 박박 밀 때도 농담을 건넸습니다.
"수술 부위만 밀까요, 아니면 전체 다 밀까요?"
"어차피 머리 감지도 못할 텐데 시원하게 다 밀어버리세요. 하하"
"선생님, 제 머릿결 자연갈색이고 좋은데 버리지 말고 팔아서 용돈하시죠?"
"그럴까요?"
한쪽 눈엔 검은자, 한쪽 눈엔 흰자 멀리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미경아, 괜찮나?" 수술이 끝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대답도 못하고, 눈을 슬며시 떴는데 남편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수술시간이 회복까지 걸쳐 9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제게 백 명 중 한 명 정도 생긴다는 뇌경련이 약간 생겨서 한쪽 눈엔 검은자만 또 한쪽 눈엔 흰자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면회 왔다가 급히 나갔던 것입니다. 갑자기 코에 뭔가가 씌워지고 기도 속으로 호스가 들어가는 걸 느끼는 순간 잠이 들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진 뒤에도 시도 때도 없이 자꾸만 잠이 쏟아졌습니다. 약, 항생제, 수액 등 맞는 게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기운도 없고 죽 먹을 때도 자꾸 졸고, 밥 때가 돼도 모르고 하루 중 거의 20시간을 잤을 겁니다.
침상 위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싸버리다 하루는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자다 깨어 침상 위에 쭈그려 앉아 오줌을 싸버렸기 때문입니다. 화장실에 가야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하고 실수를 한거죠. '어, 내가 왜 이러지?' 하며, 보조침대에서 새우잠이 든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이 뭐라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아무 말 않고 환자복과 이불을 교체해주더군요. 미안해할 새도 없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버렸습니다. 나중에 같은 병실의 환자에게 웃으면서 실수한 얘기를 했더니 자신도 옷에 소변봤다며 웃더군요. 뇌수술이 정말 큰 수술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이후에도 약기운 때문인지 자꾸만 졸음이 쏟아졌습니다. 머리를 만져보면 느낌이 수박 통통 두드리는 듯 이상하고 욱신거렸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신경이 예민해져서인지 TV소리도 듣기 싫고, 만사 귀찮아졌습니다. 건강하게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란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