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씨는 돈이 부족하자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홈쇼핑에 빠져들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사례] 40대 남성 A씨는 대기업에 오랫동안 근무하여 연봉이 5천만 원 이상이었고, 해마다 늘고 있었다. 그는 지방으로 발령이 나자 살고 있던 아파트를 전세를 내주고 전세금을 아내 B씨에게 맡겼다.
가정주부 B씨는 그때부터 자기나 남편 명의로 발급받은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쇼핑하는 재미에 빠졌다. 처음에 수만 원대 물건부터 사들이기 시작한 쇼핑 규모는 점차 수십만 원, 수백만 원대로 올라갔다. 무절제한 구매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각종 홈쇼핑회사에 지출한 돈은 4천만 원에 달했고, 목걸이와 반지 등 귀금속을 사는 데 1천만 원 이상을 들였다. 현금서비스도 1년간 1천만 원을 넘게 받았다. 자연스레 A씨가 맡긴 전세금은 모두 사라졌고, B씨는 돈이 부족하자 카드 돌려막기를 하면서 홈쇼핑에 빠져들었다. 이 사실을 A씨가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빚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났다. 분노한 A씨는 "아내에게 살림과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며 이혼소송을 걸었다. A씨가 버는 돈은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습니다. 법원도 "A씨가 일정한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가족 구성·경제 수준 등을 감안할 때 A씨의 수입은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데 크게 부족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그런데도 B씨는 무분별한 홈쇼핑 등으로 인하여 가정경제를 궁핍하게 하고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며 "B씨의 귀책사유로 혼인생활이 파탄되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혼하고 아이들도 A씨가 키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B씨는 "남편 A씨가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나 법원은 "B씨가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현금서비스까지 이용했던 점에 비추어보면 생활비 미지급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아내의 쇼핑 중독, 우울증 때문이라면 남편도 노력해야" 그런데 쇼핑중독이나 과소비에 빠진 당사자에게만 가정파탄의 책임이 있을까요. 중독에 빠진 상대를 배려하거나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배우자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도 있습니다.
[사례] 가정주부 C씨(40대)는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 집 안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통해 다소 과도하게 물건을 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주요우울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C씨의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서 집안이 엉망이 되었고 쇼핑 물품은 늘어갔다. 심지어는 전신성형수술을 하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남편인 D씨는 수시로 C씨를 몰아붙였고, C씨도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며 가출했다. 법원은 장기간 별거상태가 이어져 부부 관계가 회복될 수 없다면서 이혼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잘못은 양쪽 모두에게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D씨는 평상시에 C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였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의 치료를 돕는다거나 갈등해결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비난만 하는 등의 잘못을 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부부 중 한쪽이 쇼핑중독이나 과소비에 빠졌더라도 결과만 보고 상대를 비난할 게 아닙니다. 우울증 등 질환이 있거나 부부갈등 등 가정생활에서 생기는 심리적인 요인이 원인이라면 서로 배려하고 치료를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소비나 사치는 가정에서 꼭 여성만이 하는 걸까요. 남편의 통 큰 소비로 파경을 맞은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도 법정까지 왔습니다.
한 달 수천만 원 '묻지마 소비'하던 남편, 알고 보니[사례] 30대 남성인 E씨는 결혼 전부터 씀씀이가 커서 아내 F씨를 놀라게 했다. 결혼 후에도 신용카드를 주면서 마음대로 쓰게 했다. E씨는 자기 직장, 월수입, 금융기관 거래 내역 등을 알려주지 않았고, F씨가 물어봐도 "그냥 사업한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E씨는 수시로 아내 F씨를 백화점이나 호텔에 데리고 가거나 주식투자를 하면서 흥청망청 돈을 썼다. 카드대금만 한 달 평균 2천~3천만 원 청구되었다. 하지만 호화로운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E씨는 사업하던 아버지가 분산 관리하던 통장 중에서 자신과 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는 돈을 사치나 주식투자에 몰래 사용해왔던 것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그가 지출한 돈은 무려 50억 원이나 되었고, 밀린 카드대금과 연체이자만도 1억 원을 넘었다. 쪽박을 차게 된 E씨는 자살까지 시도했다. 아들의 실상을 알게 된 E씨의 부모는 생활비 등 모든 지원을 끊었다. E씨는 처가에까지 손을 벌렸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그는 생활이 여의치 않자 집을 나가 이혼청구를 했고, F씨도 "더 이상 못살겠다"며 맞소송을 냈다. 한 달에 수천만 원을 척척 쓰던 두 사람의 화려했던 삶은 이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혼의 주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당연히 E씨입니다. 법원은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아버지 재산으로 온갖 사치를 누리며 살다가 사업이 실패하고 본가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이 끊기자 무책임하게 자살을 기도하고, 경제적 파탄의 책임을 아내에게 돌리며 분란을 일으키다가 결국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동거 및 부양의무를 저버린 E씨에게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어느 한 쪽의 과소비 때문에 일상적인 가정생활이 어려워진 정도라면 부부 사이의 부양의무를 위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배우자의 악의의 유기'로 보아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합니다. 인터넷쇼핑뿐 아니라 술, 도박, 유흥 등에 돈을 낭비한 것도 충분히 이혼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쇼핑도 정도가 지나쳐 중독수준이 되고 이 때문에 불화가 자주 생기고 부부간 신뢰가 깨질 정도라면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사유'가 될 수도 있겠지요.
유책배우자에겐 이혼청구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