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등록 2013.02.22 14:28수정 2013.02.22 14:28
0
박근혜의 의료공약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민생과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당선되었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여성, 자영업자, 저소득층, 고연령층 등 상대적으로 복지정책에 취약하거나 복지수요가 높은 계층이 박 당선인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위기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분열되지 않고 개혁진보진영보다 더 강력하게 결집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실현가능한 복지정책에 대한 기대감을 주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박 당선인은 4대 중증질환(암, 심장병,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비(비급여 진료비)까지 포함해 단계적으로 보장률을 10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지금도 4대 중증질환은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의 95%를 국가가 부담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여전히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 간병비, 특진료(대학교수 진료비), 상급병실료(6인실보다 상급의 병실료)와 같은 비급여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약은 중증질환에 걸리면 당장 돈 걱정부터 해야 하는 많은 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박 당선인은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를 통해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는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에 한해 1년 동안 본인이 부담한 의료비가 일정 금액을 넘어가면, 국가가 그 초과 의료비를 납부해주는 제도이다. 박 당선인은 소득별로 200~400만 원인 현행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를 더 세분화해 50~500만 원으로 조정함으로써, 지금 제도에 비해 추가로 67만 명이 진료비 경감 혜택을 볼 것이라고 밝혔다.

삼중 딜레마

하지만 대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당선인의 의료공약이 후퇴할 가능성을 점쳤다. 바로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국내외 경제위기 때문이다. 주요 국제투자은행이 연이어 2013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했다. 한국은행도 작년 10월에 2013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한데 이어, 며칠 전에는 이미 한 번 낮춘 전망치를 0.4% 더 낮추고야 말았다.

이런 까닭에 언론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처한 트릴레마(trilemma; 삼중 딜레마, 세 가지 문제가 서로 꼬인 상황, 여기서는 복지공약·증세 없음·재정건정성)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대선기간에 복지를 화두로 내세우면서, 연간 27조 원씩 5년간 135조 원을 마련해 복지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재원 마련 방안에서 증세는 빠져있고, 또 재정건정성을 강조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증세보다는 비과세·감면 등을 줄이고, 복지행정·재정 개혁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도 박근혜 정부가 복지공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공약 바꾸는 박근혜 인수위


대통령 당선증의 잉크가 다 마르기도 전에 보수언론에서는 "당선인은 선거 기간 국민에게 '해주겠다'는 말만 했다. 이제부턴 '참아달라'는 말을 함께 해야 한다.(<조선일보> 2012.12.20)"던가 "표를 얻기 위해 제시했던 과도한 공약은 이제 현실에 맞게 보정(補正)해야 한다(<동아일보> 2012.12.21)"는 식으로 복지공약의 후퇴를 주문했다. 그리고 역시 인수위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벌써 인수위가 4대 중증질환 관련해서 공약을 축소하기로 했다. 일단 보장범위에서 간병비가 제외됐다. 요양병원의 88%, 상급종합병원의 72%, 종합병원의 49.7%의 환자가 간병서비스를 이용할 정도로 간병서비스는 반드시 필요하고, 따라서 간병비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체 비급여 진료비의 55%가 넘는 특진료와 상급병실료에 대해서도 보장에서 제외하는 것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에 대한 약속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우려스럽다.

또한 박근혜 당선인은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겠다고 했지만, 2013 예산안에서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금 3194억 원, 의료급여 대상자 의료비 보조금 2824억 원이 삭감되었다. 이미 2010년 현재 정부의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이 4조 원 넘게 미납되어 있고, 작년에도 의료급여 예산 부족으로 인해 의료기관에 지급하지 못한 금액이 6천억 원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 삭감을 단행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이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선 직후 새누리당은 당 공식 트위터를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없다고 발표했다. 인터넷을 통해 가스, 전기, 공항, 수도, 의료 등에 대한 민영화 의혹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하지만 의료민영화를 향한 박근혜 정부의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선 때에도 박 당선인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에 대해서 현 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찬성 입장과 더불어, 영리병원 내 내국인 진료도 허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인수위에서 유일한 의료인이자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에 영리병원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국민건강보험을 사회주의 체계라 부르며, 민영의료보험을 강조하는 인사를 인선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영리병원을 활성화시킨다거나 국민건강보험을 위협하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당장은 밀어붙이지 않을 수도 있다. 강력한 의료민영화 드라이브를 추구하다가 촛불시위의 역풍을 맞은 이명박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서 말이다. 하지만 또한 이명박 정부가 그러했듯, 박근혜 정부도 자본에게 커다란 이윤을 가져다 줄 의료민영화 정책을 끊임없이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 치장해도 재벌과 기득권을 옹호하는 이명박 정부의 계승자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양극화된 삶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기 쉽다. 우리나라처럼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의 말처럼 "정말 힘없고 벼랑에 몰린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대기표를 받아 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또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최소한 후보 시절 약속했던 것이라도 제대로 지키라고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방식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그들이 말한 복지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해야 하고, 또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의료 정책 #의료 공약 #영리병원 #중증질환 #박근혜
댓글

홈페이지 : cathrights.or.kr 주소 : 서울시 중구 명동길80 (명동2가 1-19) (우)04537 전화 : 02-777-0641 팩스 : 02-775-6267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4. 4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민주당 지지할 거면 왜 탈북했어?" 분단 이념의 폭력성
  5. 5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김건희·명태균 의혹에... 지금 대한민국은 무정부 상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