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당시 사진
박주초
"뭐지?" 2003년 가을. 이제 막 상병이 꺾였을 때(상병이 '꺾인다'는 표현은 상병 복무 개월 수를 절반 이상 채웠다는 의미다) '그놈'이 발견됐다. 엉덩이에서 오른쪽 허벅지를 향해 약 6~7cm 정도 작은 구멍이 나 있었고 그곳에서 고름이 나와 속옷에 묻어나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2B연필심만한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곧장 의무대로 달려갔다.
"단결! 상병 박주초, 의무대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불과 얼마 전까지 수핵탈출증(흔히 디스크라 말하는 것)으로 의무대를 자주 다녀서 군의관은 내 얼굴을 잘 알고 있다.
"진통제?""아닙니다. 오늘은 그게… 고름이 나옵니다." 나는 허벅지를 가리켰다.
"뭐? 한 번 보자." 나는 서있고 군의관은 한쪽 무릎을 굽히고 나의 부끄러운 부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한동안 다소 어정쩡한 포즈로 나와 군의관은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어깨 위로 다이아몬드 두 개가 형광등 불빛을 받아 빛나며 적막함을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군의관은 아무런 말도 없이 서랍에서 연고를 하나 꺼내 들고는 환부에 발라줬다. 그가 꺼내든 것은 유명 제약회사의 복합 연고였다.
"금세 아물 거야. 이제 가봐!" '신의' 같던 군의관, 당신을 믿었건만...의학적으로 의지할 곳은 군의관밖에 없는 군대에서 나는 진심으로 그를 믿었다. 그리고 기적처럼 치료를 받은지(연고를 바른지) 하루 만에 고름이 멎었다. 나는 신과 같은 처방과 조치를 내린 군의관에 감사하며 허리 아래쪽의 일은 잊어버렸다. 하지만 새살이 쏙쏙 나 괜찮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불과 한 달도 안 돼 무너졌다. 같은 곳에서 다시 고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같은 처방과 치유, 그리고 재발을 반복하며 10개월이 흘렀다. 이후 내 이마에는 개구리(예비군 마크의 군대식 표현)가 박혔다. 2002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입대한 나는 2년하고도 1개월 후인 2004년 8월 4일 전역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은총(?)으로 약속된 26개월에서 1개월 빨리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오니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대학교 2학기 복학을 1주일 앞두고 가족들과 상의 후 집에서 걸으면 5분 거리에 있는 항문외과를 찾았다.
"아이고….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됐어요?""한 열 달 정도요."의사의 진단은… '치루'였다. 삼형제 중에 막내인 나. 형들은 자신들의 전처를 밟는다고 놀려댔다. 우리 삼형제는 모두 비염 수술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두 형은 모두 치핵(흔히 치질이라 불리는 것) 수술 경력도 있었다. 나는 당당히 외쳤다.
"치루는 치질이 아니야!"나의 외침은 형들의 놀림을 멈추게 할 힘이 없었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려놨다. 바로 입원 수속을 마치고 수술대에 올랐다. 기대와 우려, 그리고 해방감이 뒤섞인 가운데 수술은 빠르게 진행됐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수술이 끝났다. 내 허벅지에서 항문까지, 깊은 수술의 흔적이 남게 됐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하반신 마취라는 색다른 경험을 한 뒤 병실에 옮겨졌다. 진통제와 링거 하나를 달고 마비된 하반신을 바라봤다.
'이제... 끝났다.'"진짜 장난 아니야, 너무 아파"... 다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