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척 장군고 김훈 중위의 아버지 김척 예비역 육군 중장이 '뇌관 화약 잔사 확인 시험'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도균
결론적으로 이들 4개 국가 기관의 입장은 동일했습니다. 적어도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판단할 수 없다'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처럼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도록 한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군 헌병대 수사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2년에 이뤄진 '국민 권익위원회'의 조사 결론은 김훈 중위가 자살하지 않았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주는 의미 있는 결론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권총 화약흔 실험'이었습니다.
김훈 중위 사건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혹은 김훈 중위 '오른손'에 얽힌 화약흔 논란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김훈 중위가 국방부의 주장처럼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면 방아쇠를 당긴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안티몬과 바륨' 등 화약흔 성분이 검출되었어야 합니다. 권총 사망 사건이 빈번한 미국 역시 수사관이 현장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사망자의 손을 면봉으로 닦아 이 화약흔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자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당사자로 지목합니다.
그렇다면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국방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훈 중위 오른손에서 문제의 '화약흔'이 검출되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일까요. 국방부의 주장과 달리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일체의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여 자살했다는 국방부 주장이 맞으려면 그의 오른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어야 하는데 이 같은 화약흔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국방부는 다시 말을 바꾸었습니다. "화약흔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이러한 국방부의 주장에 대해 권총 사망사건을 1천여 건 이상 부검한 '재미 법의학자' 노여수는 '비열한 꼼수'라며 비판했습니다. 국방부의 주장은 이른바 '작은 권총'과 '큰 권총'을 구분하지 않은 채 '섞어 놓은' 통계를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즉, '작은 권총'과 탄창이 돌아가는 '피스톨 권총'의 경우 화약 량이 적어 반드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으나 김훈 중위가 사망 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베레타-9' 권총은 세계에서 가장 큰 권총이라서 격발시 반드시 화약흔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큰 권총과 작은 권총을 혼합해서 통계를 내 놓고 나올 수도, 안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민 권익위는 이 논란에 주목했습니다. 정말 베레타-9 권총을 격발할 경우 발사자의 오른손에 화약흔이 남게 되는지 여부만 확인된다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발사자의 오른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다면 이는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되지 않은 김훈 중위가 아니라 제3의 인물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후 권익위는 국방부에 이 같은 '권총 발사 화약흔 실험'을 제안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실험 과정을 국방부가 주도하도록 전부 위임했습니다. 차후 국방부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여 그 결과에 불복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고육책'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3월 어느 날, 마침내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을 밝혀줄 권총 발사 실험일이 다가 왔습니다. 그야말로 '김훈 중위 자, 타살 논쟁'의 분수령이 될 역사적인 실험이었고 모두가 긴장과 초조 속에 맞이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사고 현장이었던 판문점 241GP 3번 벙커를 그대로 재현한 김포의 모 특전여단 사격장에서 모두 10명의 사수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탕탕탕' 말 그대로 '피가 마를 정도로' 긴장된 그때였습니다.
10인의 사수가 밝혀낸 김훈 중위 '오른손'의 진실. 그러나...2012년 6월. 마침내 14년을 끌고 왔던 김훈 중위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진실은 또 다시 '상식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날 사수로 참여했던 열 명의 오른 손에서 화약흔이 검출된 것입니다. 그동안 제기되었던 유족의 주장이 모두 사실 이었음이 재차 확인된 것입니다. 환호했습니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기뻐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기쁨이었고 처절하도록 슬픈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이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누구도 이것이 기쁠 일이냐며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 잔인하고도 비참한 '아버지의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우리는 순진했습니다. 우려했지만 설마 했던 국방부가 재차 자신들이 주도하여 내려진 결론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내 놓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내용이 이렇습니다. 국방부는 총기 발사자의 손에서 모두 '화약흔이 검출'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1명의 우측 손등에서 검출된 화약흔의 양이 적어 "이른바 미군 기준에 맞지 않다"며 "이를 화약흔 검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보다 정확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며 따라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기존의 본질에는 변한 것이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이 같은 국방부의 주장을 접한 우리의 심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사자 10명의 좌우 손바닥과 손등을 합치면 모두 40개입니다. 그런데 그 39개에서 다량의 화약흔이 검출되고 다만 1개의 손등에서 미군이 임의로 정한 검출 기준보다 미달하는 화약흔이 나왔다 하여 이 모두를 의미 없는 결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야비한 주장'입니다. 정말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그들이 말하는 "미군 기준에 미달하는 검출 기준이라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국방부가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제기한 발사자 1명의 우측 손등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은 미 검출'이 아닙니다. 다만 검출된 화약흔이 '미군이 임의로 정한'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훈 중위는 위 사례와 '완전히 다른' 경우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김훈 중위의 오른손은 화약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말 그대로 '깨끗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즉,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는 미량이니 뭐니 하는 무엇이 아니라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은 깨끗한 손'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김훈 중위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 사실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 사실을 왜곡하여 진실을 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8월 26일. 국가 기관인 국민 권익위원회는 이 같은 조사 결론에 대해 내부 논의를 거쳐 결국 다음과 같이 내용으로 육군 참모총장에게 김훈 중위 사건을 처리할 것을 권고합니다.
"피신청인에게(육군 참모총장에게) 군 수사기관의 초동수사 과실 등으로 인해 사망 원인이 불분명하게 된 신청인의 子, 故 김훈의 순직 여부에 대해 재 심의하여 순직으로 인정할 것을 시정 권고한다."김훈 중위가 자살했다고? 국방부에게 묻는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