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중지금은 이민구(72)씨가 주유 중이다. 이 주유소에 가면 민구씨의 부드럽고 우렁찬 인사 소리를 늘 들을 수 있다.
송상호
그는 아침 5시에 일어난다. 평택에서 안성으로 자가 차를 몰고 출근한다. 주변에서 그의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어르신! 완전 카레이스네요"라고 말한다. 어르신들의 '얌전한 운전모습'이 아닌 젊은이들의 '터프한 운전모습'이라 그렇다고. "어떨 땐 나만 가면 (신호등이) 모두 파란불이여. 일사천리로 달려 오재"라며 싱글벙글 웃기도 한단다.
"이 일이 웃으면서 위험물 파는 일이여." 그의 설명이 우습다. 얼떨결에 "아, 네~ 그러네요"라며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그는 "위험물인 기름을 취급하니 위험한 일이고, 주유하는 서비스를 하니 서비스업이고. 그랴서 쉬운 일은 아니여. 허허허허"라고 말한다.
어떤 때는 주유하러 온 손님이 도착하자마자 "야! 5만 원 어치 넣어봐"라고 했다가 민구씨를 보고는 주뼛주뼛한다고. "아! 죄송혀유. 난 또..."라면 그나마 다행. 끝까지 반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그러려니 한다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라며. 그는 시동을 걸고 떠나는 차에 대고 "안녕히 가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라는 민구씨다. 그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 그의 인사 목소리의 밝기와 크기는 한결같다. 그의 얼굴에 군데군데 깊게 패인 세월 주름이 괜히 빛나 보인다. 주유 인생 30년을 통해 도를 닦은 듯.
주유 관리자에서 주유원에 이르기까지
주유인생 30년, 그렇다. 84년도부터 그는 아산에 있는 휴게소 겸 주유소에서 총책임자로 근무했다. 60세가 되어 정년퇴임할 때까지 50여 명의 휴게소 직원을 관리했다. 물론 7~8명의 주유원 관리도 했다.
"그땐 그렇게 도둑 놈이 많더라고. 나 참 도둑 놈 관리하느라 세월 다 보냈네 그랴." 웬 도둑 놈? 아르바이트생들이 현금을 주로 만지니 주머니에 슬쩍하는 행위를 말한다. 요즘처럼 카드결제가 대중화되지 않은 시절의 일이다.
"한 번은 내가 화장실에 앉아 볼 일을 보는 디... '야, 너 얼마 꼬불쳤냐. 난 얼마 꼬불쳤는데'란 말을 들었어. 내가 변기에 앉아 볼 일 보는지 꿈에도 모르고 지들끼리 한 이야긴 겨. 바로 나와서 걔들 잘라버렸지. 허허허." 한 번은 영화 <주유소습격사건>과 같은 일도 있었다고. 청년이 오토바이 타고 와서 돈을 훔쳐갔다는 것. 알고보니 주유원 중 한 청년하고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것. 그 청년의 누나가 경찰인데, "제발 내 동생 일 좀 시켜달라"고 하도 부탁해서 일 시킨 청년이었다니. 그 시절 기름이 리터당 240원 정도. 요즘 리터당 2000원 내외. 약 10배의 기름이 오를 동안 그는 기름밥을 먹은 셈이다. 8년 전부터 지금의 주유소 대표(정순태씨)와 인연을 맺고 주유원으로 일하고 있다. 8년 동안 정대표가 사정상 주유소를 세 번 바꿨지만, 그때마다 함께 했다.
"어르신은 여러 차례 우수 주유원으로 표창도 받았어요. 제가 없어도 혼자 다 하셔요. 어르신은 제게 모든 면에서 정신적 지주에요"라고 말하는 정 대표. 정 대표의 무한신뢰가 느껴진다.
친목모임 15군데, 줄인 게 10군데?잠깐, 그 나이에 그럴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바로 산행이라는 것. 85년도부터 시작한 산행. 전국에 유명한 산은 모두 다 다녀봤단다. 어제도 쉬는 날이라 산행을 하고 왔단다. 요즘도 "어디 좋은 산 없나"며 정보신문의 산악회소식을 유심히 체크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