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만들어 유해화학물질 관리 전담해야"

[인터뷰] 백성옥 영남대 교수·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

등록 2013.02.18 10:51수정 2013.02.1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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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경북 구미의 한 영세 입주업체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 현장에 있던 업체 직원 4명과 소방관 1명 등 5명이 숨졌다. 사고 직후 불산가스는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러나 관리 부처와 지자체의 대응력 부족으로 중화제 살포, 주민 대피 등 기본적인 조치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부 주민과 인근 공장 직원들이 유독가스를 흡입해 치료를 받았고, 인근 농작물·가축·차량·건물 등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에도 유해화학물질 누출 사고는 잇따랐다. 지난달 12일에는 경북 상주에서 염산 누출사고가, 15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28일엔 대기업인 삼성전자의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나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했다.

이처럼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계속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현행 화학물질 관리체계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성옥(57) 영남대 교수를 14일 만나 '국내 유해화학물질 관리의 문제점과 대책'을 물었다.

 백성옥 교수
백성옥 교수온케이웨더 고서령

백 교수는 먼저 "기업 친화적인 정부와 어떻게 해서든 기업체를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정책이 환경·안전규제를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MB정부가 '기업체를 살린다'는 명목 하에 화학물질에 대한 각종 규제와 인허가제도를 굉장히 완화시켰다"며 "살림이 어려운 지자체들은 각종 특혜를 내걸며 기업체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체를 유치하려면 좋은 조건을 내걸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안전 규제까지 완화시켜 버린 것이 화학물질 누출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염산 누출사고가 발생한 경북 상주의 웅진폴리실리콘의 경우 지자체에서 100억 원 넘게 지원금을 주며 유치한 회사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기업체에게 이것저것 안전 기준을 제시하거나 강력하게 단속을 할 수 있겠느냐는 거죠."

백 교수는 또 "국내 화학물질 취급업체는 폭증하는데 화학물질을 관리·단속하는 인력은 오히려 줄어들어 관리 부실이 초래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의 화학물질 취급업체는 최근 3년간 5배 이상으로 급증(2009년 103개소→2012년 8월 577개소)했다. 그러는 동안 대구지방환경청의 화학물질 전담부서는 오히려 폐지됐고, 단속 인원은 3명으로 줄었다는 것. 최근 불산 누출사고가 일어난 구미시의 경우 161개 업체의 유독물을 단 1명이 단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 교수는 "지자체 장들이 겉으로 보이는 자신의 치적 쌓기에만 집중할 뿐 주민의 환경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는 게 큰 문제"라는 지적도 했다.


"부처별로 분산된 유해화학물질 관리, 누출 피해 키웠다"

백 교수는 "유해화학물질 관리가 환경부, 노동부, 소방방재청, 지식경제부 등 부처별로 분산돼 있는 것이 유해물질 누출사고의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대해 지금도 형식적으로 부처별 담당을 짜 놓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고가 났을 때 전체 상황을 총괄하는 부처가 없다는 게 문제예요. 구미 불산 사고가 터진 당시에도 사람들이 어느 부처로 보고를 해야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했다는 것 아닙니까. 사고 수습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령탑' 역할을 할 부처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환경부가 '유해물질안전관리 특별법'을 만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화학물질 관리를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법이 만들어지면 담당 부서가 생기고 예산이 책정되기 때문에 효과적인 유해물질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유해화학물질의 99%는 기체화돼 공기 중으로 확산됩니다. 사고가 처음 발생하는 것은 사업장 내부지만, 일이 커지면 결국엔 대기로 퍼져나가고 강으로 흘러가 환경 문제가 된다는 거죠. 때문에 환경부가 사고 발생 처음부터 상황을 파악하고 끝까지 책임지는 역할을 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백 교수는 또 "정부는 어떤 유해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국민들에게 전부 공개할 필요가 있다"며 "국민들은 내가 숨쉬는 공기에 나쁜 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루에 우리 몸에 유해물질이 100개 들어온다고 하면 그 중 90개는 공기를 타고 들어옵니다. 오염된 물이나 쓰레기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경각심을 빨리 느끼죠. 반면,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채 계속 노출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 수준이라면 국민들이 직접 요구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대기환경관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성옥 교수는 지난해부터 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백성옥 교수는 지난해부터 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을 맡아오고 있다.온케이웨더 고서령

백성옥 영남대 교수·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
▶영국 런던 Imperial College 석사, 박사 (대기오염제어 전공) ▶前 영남대 연구처장 및 산학협력단장 ▶現 영남대 환경공학과 교수(1988년~) ▶現 한국대기환경학회 회장(2012년~) ▶전문분야 : 대기환경관리(유해대기오염물질 측정·분석·평가)
덧붙이는 글 고서령(koseor@onkweather.com) 기자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날씨 전문 뉴스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불산누출 #유해화학물질 #대기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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