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회관제사가 시작되는 곳. 이곳에서 굴 떡국을 먹었음.
허관
음식 냄새의 근원은 떡국이었다. 잘잘한 간월도 굴만 듬뿍 넣고 끓인 떡국이었다. 천수만의 굴은 잘지만 씹으면 입 안 가득 풍기는 바다냄새가 일품이다. 그 유명한 간월도 어리굴젓에 쓰이는 굴이다. 특히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굴이 가장 맛있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다. 갯바위에 붙어 하루의 반은 바닷물 속에서 영양을 섭취하고, 반은 햇빛을 받으며 자라서 천수만의 굴은 맛이 깊다. 조선 초대 왕인 태조 때부터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다.
떡국 두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토속주를 맛봤다. 한눈에 봐도 마을에서 직접 띄운 진갈색의 토속주다. 맛이 달착지근하니 혀에 딱 달라붙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각 지역별로 빚는 술은 여행 시 가장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혀에 달라붙는 맛에 홀려 한두 잔 마시다 보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여행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울려 퍼지던 소리가 트로트에서 장구와 북·꽹과리 소리로 바꿨다. 뱃속이 든든해지고, 맛만 본 술기운이 더해지자 신명난 소리를 따라 갔다. 소리의 진원지는 당집이었다. 당집은 섬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으며, 주변에 몇백년 된 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 성황당과는 달리 세 개의 건물이 있었다. 왼쪽부터 원당·산제당·창고였다. 원당에는 화려한 다섯 개의 그림(사해용왕장군·삼불·사해오방신장 등)이 있었고, 중앙 산제당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호랑이를 쓰다듬는 백발노인' 그림이 걸려 있었다.
▲당집황도 당집
허관
안면도 황도 붕기풍어제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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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안개 자욱한 밤이면 지금의 황도 당산에서 밝은 불빛이 발하여 항로를 잃고 표류하는 배들이 무사히 귀향할 수 있게 하여 당집을 짓고 제사를 모시며 신성하게 여겼다 한다.
제의식을 주관하는 제주는 1년간 부정하지 않은 사람으로 선출하며 제물로는 동쪽에서 구한 부정하지 않은 소를 잡아 사용하는데, 돼지는 제신으로 모시는 뱀과 상극이라 해 마을에서 기르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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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의 방향이 정면이 아닌 왼쪽으로 난 맨 마지막 건물이 궁금해서 문을 열어봤다. 피비린내에 조금 전에 먹은 굴이 식도를 따라 역류하는 것을 겨우 밀어 넣었다. 건물 안에는 800kg의 황소를 부위별로 나누고 있었다(이후로 참석자에게 제공되는 소고기 꼬치구이·소고기 삶은 고기·갈비탕 등을 먹지 못했음). 제사의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인 피고사를 치르기 위해 준비하던 중이었다.
첫날 풍기붕어제의 의식 절차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됐다. 소를 잡아 각 부위별로 살을 떼어서 제물로 바치는 피고사, 무당이 당에 오르기 전에 집집마다 풍어와 일 년 동안 안녕을 기원하는 세경굿, 그리고 제물을 앞세워 당집에 오르는 당오르기, 그리고 본격적인 굿이 시작된다(도착했을 때 피고사는 끝났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실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지 못하고, 세경굿과 당오리기 굿의 일부 만 봤다).
집집마다 풍어와 1년 동안 안녕을 기원하는 세경굿·당오르기세경굿은 원래는 제주 집에서 지냈는데, 현재는 마을회관에서 지냈다. 마을회관은 당집과 약 300미터 떨어져 있다. 마을의 가정마나 안녕과 운수를 기원하는 굿이다. 신명 난 범패소리와 어깨가 들썩이는 장구소리, 이를 이끄는 날카로운 피리소리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무당이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