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늬 손녀가 그린 이근후 명예교수의 초상화
이하늬
저자는 자동차와 휴대전화, 손목시계가 없다. 그러나 그의 자동차는 벤츠보다 뛰어난 BMW(BUS, METRO, WALK)라고 말한다. 44년 된 무사고 면허증이 있지만, 그는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생각이 너무 많아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시계는 딱 하나, 결혼을 할 때에 아내에게서 결혼선물로 받았었는데, 가정교사하면서 가르친 아이가 훔쳐 가 엿으로 바꿔 먹은 뒤로 사지 않았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벽에 시계가 붙어있어 필요가 없더라는 것.
또 가는 곳마다 공중전화가 있고, 근무를 할 때에는 사무실에 전화가 있으니 휴대전화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편하다고 하지만 사실 촌각을 다투는 급한 용무는 그리 많지 않고, 오히려 휴대전화 때문에 천천히 알아도 될 일을 미리 알아 마음고생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선진국 1인당 소득이 몇 배나 증가했지만 이들 국가의 행복지수는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최신 자동차와 휴대전화, 카메라 등 전자제품을 소유해도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박완서 선생의 죽음에서 얻은 교훈첫해 시상식 날에 박완서 선생은 말했다. "나는 평생 이런 일에 참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모임에 나서는 것이 거북하고 내 이름 걸고 상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일은 마음이 끌립니다. 부디 이 상을 오래 주기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습니다."(본문 310페이지에)저자가 오랫동안 봉사를 해 오던 광명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 공모전 시상식에서 고(故) 박완서 선생이 저자에게 한 말이다. 저자는 일면식도 없는 박완서 선생에게 아이들의 시상식을 부탁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수락을 하여 죽을 때까지 매년 시상식에 참여해 아이들에게 상을 주었다고 한다. 상을 받은 아이가 학교 담임교사에게 박완서 선생님에게서 직접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가 거짓말을 한다며 꿀밤을 맞기도 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소개 한다.
저자는 항상 소녀처럼 수줍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상을 주시던 박완서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한다. 그러면서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죽고 난 다음에 사랑하는 이들이 덜 슬프도록 미리 배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평소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 '밝은 얼굴로 생활하고 부드러운 말투를 쓴다. 게으르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큰 업적보다 차곡차곡 쌓여 내 주위를 좋게 만들고 평화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공기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존재가 된 박완서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저자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고 했다.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고 그는 강조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현대인, 나이 드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사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가족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팔십을 바라보는 노익장인 이근후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가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란 제목으로 펴낸 이 책은 무엇보다도 읽어 갈수록 '쿡쿡쿡'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재미있는 책이다.
거기에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로 20만 명의 독자 마음을 사로잡았던 김선경씨가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이근후 명예교수와 함께 엮어 펴낸 책이라 읽기에도 매우 편하다.
그는 아직도 그의 마음속에는 별똥별을 줍던 철들지 않는 소년이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가끔 가족과 동료, 제자들에게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양복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다거나, 메고 다니는 크로스백 안에 사막에 떨어져도 사흘간은 버틸 수 있는 서바이벌 키트가 들어있다고 소문을 내기도 한다는 것.
이 책에는 그렇게 아직 철들지 않은 소년의 티 없는 익살과 유머가 팔십 노익장의 지혜 속에 녹아있다. 그래서 책을 읽어가다 보면 소년의 익살과 노익장의 지혜를 이중으로 느끼게 된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서 50년간 환자를 돌보며 학생들을 가르쳐 온 정신과 의사이다. 그런 그에게도 숨겨진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려운 집안 형편을 혼자서 해결하며 살아야 했다. 대학 시절에는 4·19와 5·16 반대 시위에 참가해 감옥 생활도 하며 고난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