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칭찬받으며 만든 떡, 입에서 녹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짜 절구질해서 만든 쑥인절미

등록 2013.02.15 09:18수정 2013.02.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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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떡 아내가 못난이 떡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못난이 떡아내가 못난이 떡이라 이름 붙였습니다.황주찬

장모 : 그렇지, 잘 허네. 많이 해 본 솜씨네?
사위 : 절구통이 좀 작네요.
장모 : 오늘 힘 한번 제대로 낸다. 맛난 떡 한입 먹겠다.
사위 : ... (묵묵히 절구질을 합니다)


절굿공이를 머리 위까지 치켜 올립니다. 절구통이 쪼개지도록 내리칩니다. 설 다음 날, 쑥 인절미를 만듭니다. 떡 만드는 내내 장모님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멈추지 않습니다. 정말 제가 절구질 잘해서일까요? 무슨 이유든 상관없습니다. 쫀득한 인절미를 아이들 입에 넣어 주면 그만입니다. 

11일 아침입니다. 처가에서 늦잠을 잡니다. 갑자기 황토 방에 딸린 부엌이 소란합니다. 부엌으로 난 여닫이문을 빠끔히 열었습니다. 장모님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어둑한 부엌, 잉걸불이 장모님 얼굴에 일렁입니다. 아궁이 위 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릅니다.

장모님이 떡 만들려고 밥을 찌고 있습니다. 아이들 좋아하는 떡을 만들겠답니다. 선잠 털고 일어나 손을 보태기로 했습니다. 제가 부엌으로 나오자 장모님은 힘들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오기가 생깁니다. 당장 팔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나섰습니다. 장모님은 마지못해 저에게 작업 지시를 내립니다. 창고 어딘가에 있을 절구통을 찾아 깨끗이 씻어 놓으랍니다.

집안 곳곳을 뒤진 끝에 창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절구통을 겨우 찾았습니다. 단단하게 생긴 절구통을 손으로 번쩍 들었는데 꽤 무겁습니다. 하기야 온몸이 돌로 만들어졌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무거운 돌 절구통을 이리저리 굴려 가며 깨끗이 씻어 부엌으로 옮겼습니다.

시골집 아궁이에 군불 때는 일,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불장난 개구장이 삼형제가 아궁이에 불을 피웁니다. 제법 불길이 올라오더군요.
불장난개구장이 삼형제가 아궁이에 불을 피웁니다. 제법 불길이 올라오더군요.황주찬

쑥 잘 익은 쑥입니다. 인절미 만들때 함께 넣었습니다
잘 익은 쑥입니다. 인절미 만들때 함께 넣었습니다황주찬

어느새 마당에서 공놀이하던 개구쟁이들이 부엌으로 몰려 왔습니다. 공놀이에 지친 아이들은 신 나는 일 찾아 집안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더니 소란스런 부엌으로 들어왔습니다. 녀석들은 아궁이에 불 지피는 모습을 보고 이내 눈을 빛냅니다. 결국, 비좁은 아궁이는 세 아들이 차지가 됐습니다.

아궁이를 차지한 후, 큰애가 의젓하게 제게 말을 건넵니다. 밥 짓는 일을 돕겠답니다. 하지만 큰애 말이 핑계라는 걸 잘 압니다. 세 아들 모두 불장난 하고픈 마음이 가득 찬 얼굴입니다. 속마음을 읽었지만 일부러 쫓아내지 않았습니다. 시골집 아궁이에 불 지펴 보는 일, 흔치 않은 경험입니다.


장모님도 모른 체 밖으로 나갑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본 세 녀석은 더 의기양양해집니다. 종잇조각을 아궁이에 마구 던져 넣습니다. 서로 불 잘 지피는 방법을 놓고 티격태격 다툼도 벌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불을 피웁니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요? 애들 장난 덕분에 밥이 잘 익었습니다.

한참 애들 불장난을 지켜보고 있는데 장모님이 급히 부엌으로 들어옵니다. 장모님은 떡시루 위 뚜껑을 열고 쑥 덩어리를 몇 개 던져 넣습니다. 쑥떡을 만들 모양입니다. 하기야 그냥 인절미 만들면 재미없습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부엌에 앉아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포근함이 밀려옵니다. 어릴 적 부엌에서 일하시던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새벽이면 하얀 연기가 가득 찬 부엌에서 밥 짓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하염없이 시루를 빠져나오는 흰 연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장모님이 뜨거운 밥을 절구통으로 옮깁니다.

밥이 뜨거울 때 절구에 넣고 찧어야 쫀득한 떡이 된답니다. 재빨리 일손을 도왔습니다. 절구통에 쑥과 밥이 한가득 채워졌습니다. 이제 제 차례입니다. 힘 한번 제대로 써 봐야지요. 일단, 절구통보다 조금 높은 곳에 편하게 앉아 양발로 절구통을 꽉 붙잡았습니다.

쉼 없는 절구질, 장모님 눈치만 살폈습니다

떡밥 밥과 쑥을 절구통에 넣고 절구질을 했습니다. 처음엔 쉽더군요.
떡밥밥과 쑥을 절구통에 넣고 절구질을 했습니다. 처음엔 쉽더군요.황주찬

떡 이 모양 만들기까지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절구질을 해야합니다.
이 모양 만들기까지 참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절구질을 해야합니다.황주찬

밥을 향해 절굿공이를 힘차게 내리꽂았습니다. 절굿공이가 물컹한 밥을 뚫고 절구통 바닥까지 내려갑니다. 장모님이 힘 한번 제대로 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 소리 들으니 힘이 절로 납니다. 열 번, 스무 번 힘차게 절구질을 했습니다. 지칠 것 같지 않던 힘도 바닥이 나더군요.

절구질이 스무 번을 넘기자 팔에 힘이 빠지고 허리가 아파져 옵니다. 서서히 장모님 눈치를 살피게 되더군요. 잠시 쉬었다 절구질을 하면 좋겠더군요. 이런 제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한 장모님은 연신 밥 위에 물을 끼얹으며 칭찬을 쏟아냅니다.

잠시 쉬라는 말을 잊었나 봅니다. 장모님의 의도적인(?) 칭찬을 들은 터라 절구질을 멈출 수도 없습니다. 떡 찧는 일, 쉽지 않더군요. 시간이 갈수록 힘이 두 배로 들었습니다. 처음 밥에 절구질할 때는 그런대로 편했습니다. 밥이 절굿공이에 살짝 달라붙기만 했으니까요.

하지만 밥이 뭉개져 떡으로 변하니 상황은 확 달라집니다. 떡이 절굿공이와 뒤엉켜 씨름합니다. 사정없이 달라붙더군요. 소금물 묻혀가며 절구질 해 봐도 소용없습니다. 결국,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은 후에야 떡이 만들어 지더군요. 그야말로 떡이 되도록 절구질을 했습니다.

인절미는 콩고물을 뒤집어써야 제맛입니다

떡 젖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낸 뒤, 밥과 쑥이 하나로 뭉쳐 떡이 됐습니다.
젖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낸 뒤, 밥과 쑥이 하나로 뭉쳐 떡이 됐습니다.황주찬

쑥떡 큰애가 떡을 힘껏 잡아 당깁니다. 떡이 한없이 늘어납니다. 늘어난 길이만큼 고생했습니다.
쑥떡큰애가 떡을 힘껏 잡아 당깁니다. 떡이 한없이 늘어납니다. 늘어난 길이만큼 고생했습니다.황주찬

그렇게 온몸에 힘이 다 빠지자 장모님이 떡(?)이 됐다며 절구질 멈추랍니다. 그 소리 듣고 재빨리 황토 방으로 등을 돌렸는데 장모님이 또 저를 부릅니다. 아직 일이 덜 끝났답니다. 떡고물을 묻혀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절미는 콩고물을 뒤집어써야 제대로 된 떡이 됩니다. 장모님의 한마디를 아내도 들었습니다. 안방에서 야속하게 책만 파고 있던 아내가 세 아들 앞세우고 거실로 나옵니다. 쟁반 앞에 둘러앉은 아내와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제가 힘들여 만든 떡을 멋대로 떼어내 콩고물을 묻힙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만든 떡 모양,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잖아요.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못생긴 떡이 더 맛있는 거라며 마음대로 떡을 주물러 댑니다. 시간이 지나자 못생긴 떡들이 접시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저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콩고물 잘 묻은 인절미 한 개를 입에 넣었습니다. 쫀득한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군요. 가게에서 사 먹던 맛과 확실히 다릅니다. 제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던 막내가 냉큼 떡 하나를 입에 넣습니다. 그리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입니다.

처가 부엌 소란스러우면 문 열고 내다봐야 할까?

떡고물 세 아들이 멋대로 떡을 뜯어내 콩고물을 묻힙니다. 각자 성격대로 인절미를 만들더군요.
떡고물세 아들이 멋대로 떡을 뜯어내 콩고물을 묻힙니다. 각자 성격대로 인절미를 만들더군요.황주찬

절구통 돌로 만든 튼튼한 절구통입니다.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물건입니다.
절구통돌로 만든 튼튼한 절구통입니다. 다시는 쳐다보기 싫은 물건입니다.황주찬

막내가 입에 떡을 넣고 크게 웃는 통에 떡고물이 쟁반으로 와르르 쏟아집니다. 그 모습 보고 온 가족이 또 한바탕 웃습니다. 자세히 보니 막내 입 언저리가 콩고물로 뒤덮였습니다. 막내 입술에 내려앉은 콩고물 참 예뻤습니다. 선녀의 입술이 그보다 더 예쁠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내에게 떡 한입 넣어 주려고 손을 뻗었습니다. 팔이 떨립니다. 그 모습 본 막내가 앙증맞은 입술을 재빨리 제 손에 가져다 댑니다. 막내의 따듯한 숨결이 느껴집니다. 설 명절 처가에서 인절미 만들었습니다. 장모님 칭찬도 쉼 없이 들었습니다.

사위대접도 제대로 받고 왔지요. 그날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인절미 맛있게 먹던 세 아들 모습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나저나 처가 부엌이 소란스러우면 또다시 문 열고 내다봐야 할까요?
#설 #인절미 #쑥 #아궁이 #절구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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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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