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이 ‘신무기개발 군사기지’로 준비했다가 미군측의 부적합 판정에 대체 조성한 서울대공원. 반대편 원터골이나 옛골에서 오르려면 굴다리를 지나는 데, 그 위는 ‘개발독재’의 신화 경부고속도로.
최방식
그리고 3년 뒤 지도에 표기한 팔도·군현 지역별 지리적 특성을 해설하고 기록한 대동지지(大東地志). 산천·국방·도로·강역·역사지리 등의 주제별 지리학을 덧붙여 총 32권 15책으로 정리해놓은 지리학서적. 인물·성씨·시문은 빼고 군사적 내용을 강조한 측면이 있지만요.
고산자가 대동여지도 목판에 새겨놨다는 글귀 기억납니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고(山主分而脈本同其間),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진다(水主合而原各異其間)," 정기를 내뿜는 아버지의 산,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의 강과 바다를 일컬음이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길. 고개와 나루를 지나 산으로 강으로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소통의 길. 길을 안다는 것은 그러니까, 세상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죠. 바로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제 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세상만사를 알리까? 나침반·지도, 심지어 내비게이션을 가졌어도 깨달음은 고사하고 방위조차 모르는 것을.
산은 갈라지고, 물은 합쳐지고제가 어디 사는지, 이웃엔 누가 기거하는지, 소통의 길은 어디로 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수다 떨고 호기심에 식탐 채우는 게 고작이죠. 그러니 좀 다른 여행이 필요합니다. 선인들이, 세상 많은 이들이 생사고락을 함께한 역사의 길. '순례'라 해야겠습니다. 너무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게. 그 위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망경대로 다가서니. 정상에 자리한 군부대에 막혀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용서할 수 없던 고려말 학자 조견. 그가 스러진 고려왕조를 그리워하며 올라 개경을 늘 바라봤다는 망경대(望京臺)로 오르려고 서쪽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험한 바위에 눈이 쌓여 길이 아찔합니다. 앞서 가던 여행자도 오금이 저렸는지 다시 돌아 내려오네요. 여행자들 모두 그리했습니다.
보다 안전한 북동쪽으로 망경대를 우회하는데, 산모퉁이를 막 돌아서니 햇볕 가득 드는 아늑하고 따뜻한 쉼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상하리만치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곳. 여행자들은 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점심때를 넘겼으니 허기질 때가 됐거든요.
역시 '뽀시시'(아이디 이름)님 맛좋은 멸치주먹밥을 싸왔습니다. 기자는 맛없는 블랙커피를 가져온 게 고작. 김명희씨도 유기농 과자 등 맛좋은 걸 내놓습니다. 그렇게 점심에 커피 한잔을 즐기는데, 명희씨가 느닷없이 뽀시시님더러 노래 한 절을 권합니다. 기자에게도 권했지만 용기가 없어 휴대폰을 꺼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