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대문평소엔 거의 닫아놓는다.
김혜정
이 시골구석에서 뭘 해먹고 사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처럼 농사지을 목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시골에 와서 사는 경우를 두고 농사짓기 위해 시골로 오는 '귀농'과 구별하여 '귀촌' 했다고 하기도 하지. 내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농촌에 와서 사니 먹을거리, 우리 농산물을 구하기는 정말 쉽다. 그것도 친환경유기농 농산물이나 가공식품 등, 건강한 먹을거리들을.
이사 온 직후에 살림도 채 준비되지 않았고 해서 김장도 못 했을 테니 우선 먹으라며 이집 저집에서 나눠준 김치만 해도 1년을 두고 먹을 양이더구나. 황공하게도 귀농선배들이 모두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재료로 만든 것들이야. 내다 팔긴 뭐하다며 묵은 쌀을 갖다준 이웃도 있는 덕에 양식 걱정은 안 하고 살았지.
올 겨울은 춥기도 추운 데다 마을 초입에 있는 정류장에 버스가 하루 몇 번이나 오고 가는지 손꼽을 정도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외출할 엄두도 안 내고 집안에만 틀어박히듯 지냈단다. 그런 덕분에 별다른 수입이 없었어도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하다 못해 마을에 구멍가게 하나도 없는 덕분에 소비와 지출이라곤 통 잊고 살았으니까. 도시에서만 사는 너에겐 참 꿈같은 일로 들리겠지?
도시에 사는 네가 꿈같은 일로나 여길 법한 일이 그제 설날 아침에 또 있었단다. 시골에서 시골문화에 길들여지며 사는 나도 상상 못 했던 일이 난 데 없이 벌어졌던 거야.
'어차피 혼자 맞는 설인데, 뭐 특별할 게 있을까 보냐, 장 보러 갈 일도 없고 돈도 없고 차도 없으니 그냥 조용히 지내자'하고는 시골와 혼자 살면서 처음 맞는 명절에 대해 애써 초연한 듯 해 보건만 설날이 가까워 올수록 공연히 마음이 들쭉날쭉, 싱숭생숭하다가 급기야는 우울 모드로 변하더니 인터넷 어느 사이트에선가 흘러나오는 오래된 팝송 '해 뜨는 집'을 듣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서러움이 폭발, 엉엉 울게 되었지 뭐니.
왜 하필 '해 뜨는 집' 그 노래를 듣고서 울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울음과 눈물이란 그간 내 마음에 쌓여있던 부정적 에너지가 기회를 만나 밖으로 방출돼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굳이 참으려 하지 않고 그대로 폭발시키는 게 건강엔 더 좋은 거지.
그래 솔직한 감정 그대로에게 맡기고 오랜만에 울어봤구나. 눈물, 콧물 흘리며 엉엉 소리내 울다보니 이렇게 울고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어. 그건 다름 아닌 내 본래, 본성이었어. 내 본성은 꺽꺽 소리내어 우는 나를 향해 아주 나즈막히 따뜻한 목소리로 위로를 해주더구나.
'그래, 울어. 잘 했어.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우는 거야. 지금 울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해. 낯선 타향이지, 외딴 시골 이 넓은 집에 혼자 뿐이지, 게다가 내일은 설날이지, 설날인데 함께 보낼 가족도, 애인도, 맛있는 음식도, 막걸리도 없지. 이러고도 안 울면 감정이 메마른 거라구. 암 울어야고 말고.'
그렇게 내면으로부터 극진한 위로를 받게 되자, 갑자기 울음이 뚝 끊기더니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거야. 그래, 요리! 나에겐 요리가 있었지. 꼭 누군가를 위해서만 요리를 하란 법이 있나? 나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하는 거야. 그런데 장을 봐 온 것도 없고 무슨 요리를 하면 좋을까?
잠깐의 울음, '정화의식'으로 순식간에 기분이 밝아진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급히 광방으로 가서 묵은지통과 10년묵은 약된장통을 주방으로 들고와 내 본성이 알려준대로 슬픈, 아니 슬펐던 나를 '힐링'하기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단다.
그 요리가 뭐냐고? 바로 약된장 묵은지 찜!
묵은지를 물에 울궈내고 멸치 육수를 내고 묵은 된장을 풀어 푹 물려 완성시키는 이 음식이야말로 전통 슬로우푸드로 건강식이며, 어릴 적 추억 어린 맛과 정서를 고스란히 재현해 주니 이게 바로 힐링 아니겠냐고. 요리를 하는 중간 중간 과정을 빼놓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에 담기도 하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요리를 했지.
요리하기도 바쁜데 사진은 왜 찍었느냐고?
소통! 난 소통을 하고 싶었어. 내가 만드는 요리와 사진, 글로 자발적이긴 하지만 유배와도 같은 이 시골 오지마을 낡은 농가의 돌담을 넘어 저 세상 누군가와라도 따뜻하고 맛있는 소통을 간절히 원했는지 몰라.
요리 사진을 올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