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포 문화마을 풍물패, 샘가를 돌며 맑은 물이 솟기를 기원하고 있다.
조종안
조상들은 설에 민족의 얼이 깃든 다채로운 민속놀이로 결속력을 다졌다. 우리나라는 중국 하대(夏代)의 역법(曆法)을 따라 음력 정월 초하루를 설로 삼아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상 만물이 소생하는 음력 정월이 세수로 가장 적합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설날 아침에 집안 행사가 끝나면 일가친척과 동네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으며 연날리기, 팽이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윷놀이, 고누놀이, 칠교놀이 등을 했다. 이러한 놀이는 봄까지 이어졌으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제기차기, 고누놀이 등은 1년 내내 즐겼다.
어른들은 정월 초하루부터 풍물패(풍장꾼)를 조직, 마을 곳곳을 돌며 악귀를 쫓아주었다. 지신밟기, 고싸움놀이, 강강술래 등 지방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는데, 이러한 놀이는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고, 복을 빌거나, 건강을 소망하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응달에 선 지 93년만에 밝은 햇살 받은 설날 중국 역사서 <수서>와 <구당서>에는 삼국(신라·고구려·백제) 모두 정월(正月)을 각별한 달로 여겼으며, 신라인들은 원일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日月神)을 배례한다고 적고 있다. <고려사>에도 설날(元正)은 한식·단오·추석·동지 등과 함께 9대 풍속절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의 큰 명절이 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이 역법(曆法)에 따르는 것을 살펴보면 삼국 이전부터 대대로 내려온 민족의 명절로 추정된다. 안타까운 것은 정부가 설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설연휴를 즐기게 된 역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처럼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