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우 지음, 이덴슬리벨 펴냄
이덴슬리벨
누상동, 옥인동, 신교동, 청운동…. 서울에 있는 동네 이름이라는데 서울에 살며 이 도시의 유목민을 자처하는 나도 처음 들어본 곳들이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로 들어봄직한 효자동이 있는 지역으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촌'이라는 동네다. 서촌(西村)은 조선시대 때 생겨난 이름으로 경복궁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지어진 지명이다. 삼청동, 가회동, 재동 등이 모여 있는 북촌 한옥마을과는 이웃동네지만 다른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지금도 살고 있는 30대의 토박이이자 터줏대감인 저자는 깊고 따뜻한 주민의 시선으로 쓴 이 책 <서촌 방향>(설재우 지음, 이덴슬리벨 펴냄)을 통해 그의 고향 서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가게며, 골목길, 주민들의 표정이 담긴 사진들이 곳곳에 들어간 책장을 넘기다보면 시간이 잠시 머물렀다 가고, 과거와 현대가 교차하기도 하며, 이젠 서울에서 보기드믄 숨겨진 보물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저자가 직접 만나고 인터뷰한 서촌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동네의 숨겨진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토리 텔링'이 풍성하다. 한마디로 동네와 사랑에 빠진 어느 남자의 서촌 탐구기요, 우리 동네 여행 안내서다.
서촌에 처음 와본 사람들은 서울에 이런 동네도 있냐고들 한다. 청와대와 밀접해 개발 제한이 있는 덕분에 한옥과 골목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경복궁과 어울려 도시 같지 않은 예스러운 동네 모습이 펼쳐지니 그럴 만도 하다. 게다가 건축물 고도제한이 있어서 인왕산과 북악산의 능선이 고스란히 보이고, 서울 시내에서 하늘을 시원하게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 본문 가운데 책 속에서 마주친 사진과 글을 보고서야 나도 이 동네에 가보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경복궁 가는 길에 서촌인 걸 모르고 동네를 지나간 거다. 작은 거리에서 마주친 오래된 한옥 책방 '대오서점'에서, 작지만 알찬 통인시장, 진한 '쾌남' 스킨향이 나던 형제 이발소,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를 이겨낸 효자동 빵집까지 정말 고향에 온 듯싶어 마음이 한없이 푸근했다.
청와대가 코앞에 있어 개발제한 및 고도제한에 묶이는 데다 땅을 파면 문화재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공사를 벌이지 못하는 덕택에 아직까지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 최근에 생긴 세련된 카페, 갤러리와 수십 년 묵은 가게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워낙 변화와 개발이 많은 사회와 도시에 살다보니 다른 나라 같으면 가정이나 거리 곳곳에서 옛 조상들의 감성을 느끼게 하는 사물들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과거의 흔적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새 것, 앞선 것에 매몰되어 왔다. 이런 환경에서 옛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은 새롭고 새삼스러운 감회를 불러오고 때로 삶의 화두를 얻는 일이 되기도 한다.
서울 속의 이런 동네를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나라도 이런 책을 썼을 것 같다. 글쓴이는 서울에서 고향을 오롯이 간직하며 살고 있는 행운의 도시인이기도 하다. 알고 보니 저자는 책만 쓰는 게 아닌 서촌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스토리텔링 발굴 및 동네 소식지 발간, 골목답사, 출판물 발행의 일도 하고 있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 2012년 서울시가 뽑은 '국내 이색 직업 50개', '미래 굿잡(good job) 100개'에 선정되기도 했단다.
밥 짓는 냄새 가득한 골목길의 추억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