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에 승패결정..."클릭 한 번에 졸업 좌우되다니"

매년 되풀이 되는 대학 수강신청 전쟁... 장바구니·매크로 프로그램도 등장

등록 2013.02.07 14:35수정 2013.02.0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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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지만 마음만은 가장 분주한 시기, 대학생에겐 수강신청기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수강신청일은 2월 4일이었다. 대부분의 대학들도 새 학기 시작 전 2월 중순과 8월 중순 수강신청을 받는다.

수강신청 시작일 전날 밤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오전에 시작되는 수강신청에 대비해 누구보다 일찍 깨, 빠른 판단력으로 원하는 과목을 쟁취하기 위해서다. 미리 듣고 싶은 과목의 교수님 수업 스타일도 챙겨보는 건 필수다.


치열한 수강신청, 1분 안에 승패가 결정된다

 대학 수강신청 중인 학생(자료사진)
대학 수강신청 중인 학생(자료사진)김은희

드디어 디데이. 수강신청 30분 전이다. 미리 컴퓨터를 켜 놓는다. 인터넷 창을 띄워 놓고 속도가 괜찮은지 확인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얼른 근처 피시방으로 달려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너네 학교엔 장바구니도 없어? 대기번호 제도도?"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듯 수강신청을 준비하고 있으니 전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가 물었다. 타 학교에는 '장바구니'와 대기번호 제도가 있다고 한다. 작년에 건국대는 장바구니 제도를 도입했고, 올해는 경희대가 대기번호 제도를 만들었다. 중앙대는 2009년부터 일찌감치 장바구니제도를 도입했다. 장바구니와 대기번호제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본 나에게 친구는 이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장바구니는 예비수강신청인 셈인데, 수강신청 홈페이지에서 미리 듣고 싶은 과목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놓는 거야. 만약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과목의 수강제한인원이 다 차지 않으면 자동으로 수강신청이 완료되는 거지. 근데 학교마다 운영방식은 조금씩 다르더라."


친구는 대기번호제가 수강인원이 이미 다 찬 과목을 듣고 싶은 학생들에게 대기번호를 주는 제도라고 덧붙여서 설명했다. 수강신청 취소자가 생기면 대기번호를 부여받은 학생들이 순서대로 수강신청 기회를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엔 이런 '첨단' 시스템도 없고, 서버가 다운된 적도 여러 번이지만 지금은 부러워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난 수강신청 때 편하게 매크로 프로그램 돌리는데?"


서울 시내 한 사립대에 다니는 친구는 '수강신청을 자동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소개해줬다.

"반복해서 클릭을 해야 하는 수강신청 때, 미리 입력 내용과 클릭 위치를 지정해 놓으면 이를 자동으로 빠르게 실행해주는 프로그램이야. 쉽게 말해 '광클'(빛의 속도로 빠르게 클릭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컴퓨터가) 대신 해주는 거지."

단, 일부 대학은 서버 과부하의 우려 때문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차단해 놓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금은 매크로 프로그램도, 장바구니제도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미 손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수강신청 할 과목 이름과 학과목 번호 등 정보를 메모장 프로그램에 순서대로 옮겨 적어 넣는다. 수강신청 서버가 열리면 긴장된 나머지, 손이 떨려 자꾸 오타가 나서 검색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수강신청할 때마다 이용하는 방법이다.

메모장에서 바로 과목 이름을 단축키 'ctrl+C'와 'ctrl+V'로 복사 붙여넣기하면 빠르다. 대학 4년 내내 수강신청을 했지만 매번 수강신청 서버가 열리기 1분 전에는 손에 땀이 난다.  

오전 9시 30분. 마침내, 수강신청 서버가 열렸다. 미리 띄워놓은 다섯 개의 창 중 3개는 인터넷에 연결할 수 없다는 문구가 떴고, 2개는 정상적으로 수강신청 페이지가 열렸다. 우선순위 과목이름을 수강과목 검색창에 빠르게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수강신청 메인 페이지 화면.
수강신청 메인 페이지 화면. 차현아

수강신청 등록버튼을 누르자 '인터넷 연결 중' 표시가 떴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른 3개의 창도 '새로고침' 키를 눌러 다시 수강신청 서버에 접속했다. 처음에 수강신청 등록을 눌렀던 창은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여줬다. 이 모든 과정은 수강신청 시작 2분후인 오전 9시 32분에 완료됐다.

이틀 간 준비했던 수강신청은 대체로 5분 이내에 승패가 결정된다. 수강신청 시작 후 10분이 지나자 SNS 상에는 벌써 승패가 갈린 학생들의 엇갈린 반응들이 올라왔다.

"수강신청 실패하면 졸업도 못해"

가끔 서버가 다운되면서 수강신청 성공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난 5일 한국외대는 2013년 1학기 수강신청이 오전 10시에 시작되자 서버가 다운됐다. 이후 1시간 늦게 수강신청 서버가 다시 열렸다. 일부 학생은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며 환호하기도 했지만 "저번에도 이러더니 또 다운이냐", "피시방비 돌려내라"며 반발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강신청 당일 학교 게시판. 주로 교육학 과목과 관련된 글이 많다.
수강신청 당일 학교 게시판. 주로 교육학 과목과 관련된 글이 많다. 차현아

한국교원대의 경우 각 학년마다 들어야 하는 교육학 과목이 정해져있지만, 강의가 모든 인원을 다 수용할 수 없어 문제가 생긴다. '교육평가'라는 과목은 1분반, 2분반, 3분반, 4분반으로 개설된다. 각 분반 정원은 35명으로 총 140명이 들을 수 있다. 이 과목을 들을 수 있는 학생은 제 3대학과 제 4대학 소속 2학년들인데 총 인원이 200명이다.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작년에도 그랬는데 올해도 교육학과 사무실 앞에서 몇 시간 동안 줄 서서 수업 듣게 해달라고 졸라야 한다"고 말했다. 간혹 학과 사무실에 사정을 이야기하면 추가로 수강신청을 받아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워낙 많아 학기 초만 되면 학과 사무실 앞이 학생들로 붐빈다. 또 다른 학생은 "해당 학년 학부생 수랑 교육학 과목 정원이 왜 항상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상에선 "수강신청 잘못하면 졸업도 못하는 이런 시스템 바꿔야 하지 않냐"(@teamg******), "피 같은 돈 몇 백만원 씩 학교에 갖다내는데 자기가 듣고 싶은 수업도 못 듣는다"(@iam*******)는 반응이 올라왔다.
덧붙이는 글 차현아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 입니다.
#수강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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