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되살리게 하는 봉천동 골목길
최오균
서울에 오면 나는 베란다에 서서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주택가 풍경을 내려다보기를 좋아한다. 어쩐지 사람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그런 동네다. 원래 봉천동은 봉천 1동에서 11동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은천동, 행운동, 보라매동, 중앙동, 청룡동, 청림동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사연을 들어보니 달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다들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청림동으로 개명을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봉천동이라는 이름이 좋다. 봉천동(奉天洞)! '하늘을 떠받드는 동네'란 뜻을 가진 지명이 얼마나 좋은가? 새로 지은 이름들은 마치 강제로 창씨개명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택시 기사들도 청림동을 가자고 말을 하면 멍하니 알아듣지 못한다. 봉천동을 가자고 해야 쉽게 알아듣는다. 그래서 나에게 어디에 살고 있느냐고 물으면, 나는 봉천동에 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나는 봉천동 집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은 상도동과 경계를 이루는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에서 바라보면 눈에 띄는 교회 십자가 탑이 줄잡아 열 몇 개가 넘는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여서 그럴까?
좁은 골목 담벼락에는 <미운 오리새끼>를 비롯하여 <빨강머리 앤><마지막 잎새><선녀와 나무꾼><메밀 꽃 필 무렵><피노키오> 등 유명한 세계 명작동화와 우리 전래동화 그림들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낡은 벽에 어울리는 북(Book)벽을 조성해서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