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제 53호
종소리시인회
국어국문학과는 인문학의 으뜸
48년 전인 1965년 3월 초순, 나는 대학교 신입생으로 입학식 다음날 강의실로 갔다. 첫 시간은 당시 국어국문학과 과장이신 정한숙 교수의 강의였다. 정 교수님은 신입생 35명의 이름을 낱낱이 부른 다음 신입생 한 사람 한사람에게 왜 하필이면 국문학과에 입학하였느냐고 물었다. 그날 신입생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다.
10여 명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난 뒤 정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여학생들의 국문과 입학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남학생들의 국문과 선택은 잘못으로 생각한다."정 교수님은 당신의 체험을 빌어 국문학과를 졸업해야 대부분 중고교 교사, 출판사나 잡지사의 편집자가 대부분으로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굶을 과'라고 말씀하여 뭔가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나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그 첫 말씀에 여간 실망한 게 아니었다.
이어 정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조선시대는 청나라 말을 잘하는 사람이,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말 잘하는 사람이, 해방 후 미군정 때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행세했지만 장차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여러분의 시대가 될 것이라 하여 그 말씀에 박수를 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정 교수님의 말씀대로 그동안 춥고 배고프게 평생 중고교 평교사로 33년을 살아온 뒤 명퇴하고는 지금은 낯선 강원도에서 한 작가로 살고 있다. 40여 년을 서울에서 평생 아파트 청약 한 번 해본 적 없이 미련스럽게 산동네에서 대문도 달지 않고 한 집에서 34년이나 살다가 강원도로 내려왔지만 내가 국어국문학과를 진학한 데는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내 나라 사람으로 인문학의 으뜸은 우리말을 공부하는 국어국문학과라는 신념에는 그제나 이제나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아흔의 시인몇 해 전(2005년) 한 문인모임에서 재일동포 <종소리> 시인회원들을 만났다. 이분들은 일본에 살면서 우리말과 글을 오롯이 쓰며 회원들의 쌈짓돈을 모아 세 달에 한 번씩 시지 <종소리>를 펴내는데 그때마다 강원도 산골 내 집으로 한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보내주고 있다. 나는 이따금 그 시지에서 애틋한 망향의 사연과 이국생활의 애환을 그린 시를 두 편씩 <오마이뉴스>에 소개해 왔다.
2012년 6월 9일에는 일본 도쿄에서 당신들의 시지 <종소리> 50호 발간 기념모임이 있다고 강원산골 노인을 초대하기에 참석했더니 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분들은 당신들이 펴낸 <종소리>의 작품 일부나마 고국에 퍼지는 게 대단한 자랑으로 알고 있었다.
1923년 경북 영일 출생으로 올해 아흔이신 정화흡 시인은 "죽기 전에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말씀에 나도 마치 오랫동안 뵙지 못한 집안 어른을 만난 듯 감격했다. 그 어른은 당신의 시집 <낮잠 한 번 자고 싶다>의 뒤표지에 나의 촌평까지 싣고는 꼭 죽기 전에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소원을 이루었다고 울먹이시는데 나도 눈시울이 뜨거웠다.
낮잠 한 번 자고 싶다 정화흡38선비무장지대에거적때기를 깔아놓고낮잠 한번 자고 싶다텁텁한 막걸리에얼근히 한 잔 되어큰 대(大)자로 누워서코를 골며 자고 싶다무기 없는 공간인데무엇이 겁나겠나뛴들 뒹군들벌거벗고 춤을 춘들벌떼에 쏘여도 좋다사슴의 발꿈치에 채여도 좋다총포 없는 내 땅에서낮잠 한번 자고 싶다망망이랑 야웅이도함께 데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