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떠난 마흔 살의 배낭여행. 세상과 인생에 관해 고민하는 세계 각국의 많은 청년들을 만났다.
홍성식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겨우 20~30년 전. 우리 세대는 이런 문장에 매혹됐다. '꿈을 꾸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시간을 좀 더 뒤로 돌리자. 16세기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젊은이를 격려했다. "청춘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 이와 유사한 말을 한두 가지만 더 인용하자. "누가 부추기지 않아도 제 가슴 안에서 스스로 모반을 꿈꾸는 게 청춘이다." "젊음, 그것은 빛이 없어도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다."
가장 빛나는 생의 한때, 다시는 되돌릴 수 없기에 아름다운 시절.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청춘을 예찬하는 문장은 고금과 동서양을 불문하고 어디에나 가득하다. 청춘이 아름다운 것은 그 단어의 배후에 '꿈'이 있기 때문이다. 맞다. 꿈이다.
며칠 전.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접한 뉴스. '중고생의 장래희망(꿈) 1위가 공무원이 된 지는 이미 오래고, 최근엔 초등학생들도 자신의 장래희망으로 공무원을 말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는 소식.
공무원을 폄훼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쏟아야 할 노력과 열정을 낮춰 보는 것 역시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을 꿈꾼다는 건 '편안하고 안락하게 실직의 걱정 없이 정년까지 안정적인 월급쟁이로 살고 싶다'는 감정이 이면에 깔려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일류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의 상당수도 고시를 포함한 공무원시험에 '올인'하고 있단다. 10대와 20대가 다르지 않다.
내가 본 세계 각국의 청춘들, 그들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다시, 청춘이 왜 아름다운가로 돌아가자. 도전과 모험, 새로운 시도와 시행착오가 결여된 청춘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안정적인 일상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의미하는 '안전한 주식'은 '언제나 모반을 꿈꾸는' 청춘과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 반짝이는 보석이 되기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것. 이게 바로 '불안전한 주식'이고 젊은이는 그 주식에 투자할 권리가 있다.
2011년. 눈보라가 인천공항 휘감아 치던 매서운 겨울 날. 스스로를 청춘이라 믿는 마흔 살 사내 하나가 10개월의 '나 홀로 배낭여행'에 나섰다. 매일매일 새로운 풍광과 친구들을 만났고, 그것들 속에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했다.
달랑 배낭 하나 등에 얹고 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좌충우돌 여행하는 기간 동안 세계 각국 청춘들의 웃음과 눈물, 희망과 절망을 봤다. 전유럽을 휩쓸고 있는 낮은 성장률과 높은 실업률의 이중고 탓일까? 다른 나라 청년들 역시 도전과 모험보다는 안정과 안락을 지향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줬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젊은이들도 있었다. 또래 대부분이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이라는 '안전한 주식'을 사려할 때, 자신은 '불안전한 주식'에 투자한 용기 있는 이들. 그들이 청춘을 걸어 투자한 주식의 다른 이름은 거침없는 모험과 때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큰 꿈이었다.
아래는 내가 여행 중 만난 아일랜드와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청년의 이야기다. 그들은 남과는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내 경험에 한정된 것이기에 이들의 꿈과 희망이 보편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작아만지는 한국을 포함한 지구별 청년들에게 작은 용기와 고민의 시간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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