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과 산새
염정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품은 바다! 푸르다 못해 코발트빛이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수평으로 마주하며 닮아가는 수긍의 아름다움을 보며 위, 아래. 빈, 부를 가르는 수직이 부끄럽다.
잔잔한 물상을 일으키며 소매물도로 가는 바닷길, 한려수도의 섬과 섬 사이를 헤쳐 가는 뱃길은 짧지 않은 데다 이 섬의 남쪽에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바다가 가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바닷길에서의 풍광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동화 속 풍경이다. 단조로운 수평 위로 동화 속 난장이마을처럼 둥글하고 뾰족하게 솟은 섬들이 여행객의 눈길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저구항을 떠나 50분 정도 지나서 대매물도에 내릴 손님을 내려준 뒤 10분 쯤 지나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소매물도는 면적 0.51㎢(15만4000여 평)의 본섬과 예전 '해금도'라 불리던 등대섬 쿠크다tm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여 가구의 주민이 사는 마을과 선착장이 자리한다. 다솔펜트하우스, 쿠크다스펜션, 소매물도펜션 같은 이국적인 목조 펜션과 다솔찻집을 비롯해 섬마을 주거를 그대로 내어주는 민박 등이 눈에 들어온다.
선착장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마을 한가운데로 난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고샅길과 뒤편의 비탈길을 따라 10여 분쯤 오르니 옛 소매물도 분교가 보인다, 하지만 폐교로 굳게 닫힌 철문이 서글프다.
등대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 망태봉부터 이어진 급경사의 돌계단을 내려가니 마침 썰물 때로 두 섬 사이의 좁은 물목인 열목개가 완전히 물 밖으로 드러나 있다. 크고 작은 몽글몽글한 돌들로 이어진 열목개에는 간간히 김과 파래가 자라 또 다른 미를 보여 준다.
한여름의 등대섬은 일제히 피어난 원추리꽃이 등대섬의 풀밭을 노랗게 수놓고, 보랏빛 산비장이꽃과 주황색 참나리꽃도 군데군데 피어 있어 섬 전체가 꽃섬을 이룬다고 한다. 게다가 바다와 바위, 하늘과 초원이 물안개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다는데 한 겨울 등대섬은 겨울바람에 바르르 떠는 마른 이파리의 여윈 얼굴이 계단으로 된 산책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숨이 목에 찬 내 모습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길을 준다. 그러자 푸르름을 잊지 않은 돈나무가 군데군데서 눈인사를 하며 힘을 내 오르라는듯 한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