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온 사람들그날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변창기
고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둔지는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40분경 이라고 합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39년이 흘렀습니다. 저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충분히 의심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죽은자는 말이없다"는 말이 있듯이 진실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세상 사람들이 아니고 또 방송에 출연한 사람도 짐작하는 내용의 인터뷰 뿐이었습니다.
방송에 보면 문세광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광복절 식장에서 끌어 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시 청와대 관계자가 나서서 "장관을 만나러 왔다" 며 그를 들여 보내라 했다는 것입니다. 방송 관계자는 문세광을 안으로 들여보낸 당시 청와대 관계자를 찾아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는 "세월이 오래 지나서 나는 아는게 없다. 다 잊어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월 29일 그녀의 생가를 방문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난 후 고 육영수 여사에 대해 든 생각은 그녀는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참 아쉽기도 합니다. 그녀가 군사독재자로 또한 친일파로 분류되는 남편이 아니라 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과 만났더라면 더 오래 살면서 더 많은 봉사활동으로 삶을 살다 하늘이 준 생명을 다해 살다가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974년 당시 그의 나이 49살이었다고 합니다. 남편과는 8살 차이. 5년 후인 1979년 10월 26일 비밀요정 술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하직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둡니다. 대한민국 최고권력을 손에 쥐고 18년간 살았던 그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가 아직도 비밀에 싸여있는 부분이 많은거 같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대해 속시원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문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채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지어 관광객을 맞는 것은 또다른 영웅화 작업의 방편일 뿐일테니까요.
지난 1월 22일 대통령에 당선된 딸(박근혜 당선자) 쪽은 3800억 원을 들여 고 육영수 여사 생가가 있는 주변에다 휴양지를 조성하겠다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냈다고 합니다. 딸이 할 일은 엄마의 영웅화 작업이 아니라 진실을 파헤쳐야 하는게 먼저 아닐까요? 아무것도 모른채 억울하게 숨을 거두었을 고 육영수 여사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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