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작가 김주영 선생(우)과 이진석옹(좌)
이규봉
울진군에서는 스토리텔링사업으로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 9권으로 마무리된 대하소설 <객주>가 2013년 울진 십이령을 배경으로 제10권이 탄생한 것이다. KBS는 설날특집방송으로 제10권 집필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다. 지난 6개월간 울진에서 특집방송 취재와 촬영을 하면서 수산염전을 재현하였다. 그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재현과정은 이진석(87)옹의 증언으로 가능했다. 이진석옹은 수산리 비래동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수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1945년 해방전후의 수산염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7~18세 때 염밭에서 염부로 일하였고, 1945년 해방 직전에 염밭 한자리(300평)를 2년간 직접 운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산염전이 있었던 비래동은 해방 전후 약 40호가 살았으며, 마을에서 염전을 운영하던 사람은 4명이었고, 염전에 일한 사람은 20여 명이었다. 염전마을은 다른 동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 살았다고 한다.
수산염전의 토염생산은 오래전부터 해왔고, 이진석옹은 막바지 단계였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비래동을 비롯해서 산포리, 온양리, 부구리, 오산, 초산, 덕신 등 울진에는 염전이 많았으나, 해방전후는 수산염전, 군발염전, 덕천염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제 말기에 외국으로부터 수입소금이 들어오고, 화염방식이 번성하면서 3개소 모두 쇠퇴하였는데, 수산염전은 해방 후 약 6~7년 지속되어 가장 늦게 폐쇄되었다. 염전은 한 꼭지가 150평, 한 자리는 300평, 한 그룹은 8자리로 수산염전은 2그룹 16자리가 있었으며, 평수로는 약 5000평 규모다.
토염은 주로 봄과 가을에 한다. 2꼭지를 1조가 하는데 일하는 사람 2명과 소 1마리가 조를 이룬다. 봄인 3, 4, 5월에는 6∼7회 정도 토염을 생산했으며, 가을에는 봄의 절반 횟수로 토염을 생산했다. 생산량은 2꼭지 기준으로 할 때 물을 몇 번 주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회에 토염생산은 약 60∼70말이다. 봄에는 2꼭지에서 토염 약 420말 생산하며, 가을에는 봄의 절반 정도인 약 210말을 생산했다.
염판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