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중 기차역 플랫폼군데군데 보수한 흔적이 많지만, 플랫폼을 덮고 있는 지붕 골격도 100년이 넘은 '골동품'이다.
서부원
타이중의 시정부 건물은 아예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관광지'다. 1911년 지어진 서양식 건물로, 2층짜리에 불과하지만 주변의 그 어떤 고층 빌딩보다 웅장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으로 보면 박물관으로 쓰일 법 하건만, 여전히 수많은 공무원들이 바삐 오가며 정신없이 일하는 어엿한 '시청'이다.
이곳은 지난 2002년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지만, 대민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다 보니 여느 곳과는 달리 출입이 자유롭다. 경비병도 여권을 검사하는 곳도 따로 없다. 단체 관광객이 아니라면, 업무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만 다닌다면 사무실 안까지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100년 전 일본인 관료들이 둘러 앉아 회의하던 곳이 여전하고, 나무로 된 출입문도 세월의 더께를 입고 삐걱거릴 정도다. 에어컨과 수세식 변기, 사무실의 컴퓨터 책상과 의자 등 일부 편의시설을 제외하면 당시의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돌로 된 계단과 소맷돌은 오가는 사람의 손과 발에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기가 나고, 벽면에 사무실 이름을 매단 명패도 당시의 것은 아닐 테지만 고풍스럽게 나무로 제작돼 있다. 창문 안으로 들여다보면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이 식민지 시절의 일본인 관료로 착각이 들 정도다.
한때 이 건물은 1947년 타이베이에서 '2·28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위대 진압을 목적으로 본토에서 파견된 국민당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말하자면 혼란 속의 타이베이를 대신해 타이중이 타이완의 수도 역할을 했던 때인데, 해방 시기 타이완의 현대사를 한 몸에 품고 있는 유서 깊은 건물인 셈이다.
'2·28 사건'이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을 접수한 직후 부정부패와 인플레이션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상황에서 1947년 일어난 타이완 시민들의 시위 사건을 말한다. 타이완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평가되며, 가장 중요한 국가 기념일 중 하나다.
본토에서 급파된 국민당 정부가 시위 군중을 무차별 사살하면서 대규모 폭동으로 번지는데, 사망자가 대략 2만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범정부적인 진상규명 노력이 진행 중이다.
일본 점령기에 세워진 타이완 건축물 중에 박제화된 채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개 타이완 사람들은 건물을 누가 어떤 이유와 모양으로 지었느냐보다 그저 오래될수록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며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기보다 뿌듯하게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건물에 무슨 상점이라도 있을라치면 입구에 가보면 몇 대째 가업을 이어온 곳이 많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5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 드물지 않을 뿐더러, 타이완 사람들은 '그 정도면 오래된 축에 끼지 못한다'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타이중에서 타이베이로 돌아오는 날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타이중 기차역에서 인부 몇몇이 플랫폼 지붕을 손보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낡은 모양새로 보아 웬만하면 통째로 교체할 법도 하건만, 고작 나사 몇 개 조이고 묶는 게 전부였다. 다가가 살짝 물어보니, 웬걸, 이 플랫폼 지붕 골격도 100년이 넘은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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