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전차' 또는 지상철 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트램은 동유럽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은 불가리아 소피아의 트램.
류태규 제공
먼저 반면교사 해야 할 역사를 기억하며 아돌프 히틀러, 폴 포트와 함께 아래 세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그들은 자신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나 있을까?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라도반 카라지치.라트코 믈라디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의 새벽 거리는 괴괴하리만큼 조용했다. 크로아티아의 해변도시 스플리트에서 밤늦게 출발하는 국제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시.
1984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이며, 폐병을 앓던 청년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저격한 '라틴 다리(橋)'가 있는 도시. 거기에 크지 않은 공간에 세르비아정교회 성당과 이슬람 성당인 모스크, 가톨릭 성당까지가 각기 다른 신을 향해 첨탑을 올린 풍경.
여행객이 거의 없는 국제버스터미널에서 나를 시내로 데려다줄 트램(노면전차) 승차장을 찾아 걸었다. 트램은 동유럽 나라마다 주요 교통수단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생소한 공간이니만치 길 찾기가 쉽지 않았고, 그 덕에 제법 걷고 나서야 트램에 올라탈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전이 끝난 지 15년이 훌쩍 넘었는데, 도심 건물들이 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사라예보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홀리데이 인 호텔'까지도 그랬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건물들이 쥐 파먹은 모양으로 흉측스러웠던 건 총탄 자국 때문이었다.
보스니아 사람들의 가슴에 상흔(傷痕)이 지워지지 않은 것처럼, 탄흔(彈痕) 역시 여전했다. 한두 건물이 아니라, 그 도시 대부분 건물이 그랬다. 맞다. 때론 세월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영혼에 입은 상처는 시간만으론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다.
아직도 엄연한 무슬림 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