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이마트 매장 입구에 구입한 상품을 담는 카트가 세워져 있다.
권우성
[기사 수정 : 27일 오후 11시 40분] 카트(Cart). 카드(Card). 바코드 시스템(Barcod System).
대형마트가 생겨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수라고 한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대신할 수 있는 카트가 없다면, 신용카드나 할인카드가 없어 현금으로만 결제를 해야 한다면, 가격표를 일일이 확인하고 계산원이 수작업으로 물건값을 정산해야 했다면 대형마트의 지금과 같은 번영은 힘들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이 세가지 힘만으로 대형마트가 유지되고 확장돼 왔을까? 그렇지 않다. 대형마트 확장의 이유는 무엇보다 소비자를 불러 모으는 최저가 상술에 있다. 최저가 보상제, 1+1행사, 끊임없는 할인행사가 없다면 아무리 편리한 시설이라도 고객을 불러 모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저가 상술 뒤에는 납품업체의 울며 겨자먹기식 희생과 노동자들의 저렴한 노동이 있다.
최저가 정책 떠받치는 납품업체의 희생과 저렴한 노동 이마트와 거래를 하다 20억 이상 손해를 보고 2008년 1월 21일 서울 응앙동 이마트 앞에서 분신한 차아무개씨, 30억 대출받아 공장증설을 한 두부 납품회사가 폐업 직전으로 내몰려 직원 80여 명을 내보내야 했던 두부 할인전쟁, 하루 종일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서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최저가를 지탱하기 위해 강요된 납품업체와 노동자 희생의 한 단면이었다.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마트의 맨얼굴. 거기에는 카트, 카드, 바코드 시스템과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어온 노동과 인권이 있다. 껌뻑이는 형광등 갈아 끼우듯이 너무나 태연하고 치밀하게 한 감시와 해고, 대형마트를 관리 감독해야 할 정부 기관들조차 그들과 한 통속이 된 전말은 할 말조차 잃게 한다. 기름값 잡겠다는 핑계로 대형마트에 주유소를 허가해 그들의 배를 불려준 이명박식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해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대형마트 자본 지킴이로 전락해 버린 현실은 정권, 정부의 존재 이유에 근본적 회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시는군요?" 이마트 피자가 출시된 2010년 9월, 동네 피자집마저 다 망하게 생겼다는 누리꾼들의 비난에 이마트 정용진 부회장은 이같이 응수했다. 대기업, 대형마트의 무차별 사업 확장으로 빵가게, 치킨집에 이어 피자집마저 줄줄이 문을 닫는 생존권 위기에 대한 비난을 이념 논쟁으로 치부해버린 정 부회장.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마트의 노사관리는 노동자의 능력보다 노조에 우호적인가, 아닌가 하는 이념 잣대가 우선되었다. 노조에 우호적인 노동자를 문제(MJ) 사원, 이마트에 충성도가 높은 노동자를 가족(KJ)사원으로 분류해 관리해 온 행태는 누가 뭐래도 철저한 이념 편 가르기라 할 수 있다.
무노조 경영을 주창해 온 삼성은 오래 전부터 노조 설립을 계획하거나 회사 방침에 비판적인 사원들을 문제 사원으로 낙인찍어 왕따시키고 온갖 차별을 가했다. 삼성 SDI 해고자 김갑수씨, 삼성화재 한용기씨의 증언만 보더라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소위 문제 사원들에게 가한 협박과 감금, 미행과 강제 인사 발령은 과거 군사정권 정보기관이 저지른 패행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드러난 이마트 노동자 감시, 비인권적인 처우는 무노조 경영을 앞세웠던 삼성의 인력관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사내도 아닌 밖에서 직원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녹취기, 녹음기, 망원경, 망원 카메라를 준비하고 타인 명의의 차량까지 준비하는 치밀함. 미행이 발각되면 도주하는 요령까지 기재된 매뉴얼을 준비했다는 것은 노조 파괴 전에 인권 유린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노조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는 이유로, 문제(MJ)사원이라는 이유로, 직원의 이메일과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하여 노조 가입을 감시한 행위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지인은 이마트 포인트 카드를 잘랐지만... 저렴한 상품은 저렴한 노동이 뒷받침 되어야 하고, 저렴한 노동 뒤에는 이를 조장하고 방조하는 국가 정책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저렴한 상품으로 고객을 불러 모아서 부를 증식시키고 끝내 승자독식의 구조의 최고를 구가하려는 이 대형마트는 노동자를 감시하여 오직 회사에 충성하는 저렴한 노동자로 남기기 위해 편법과 불법의 숱한 악행을 자행해 왔다. 또 국가는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하고 불법을 방치하면서 값싼 노동력 제공의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