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댐' 사기 사건
환경운동연합
그 뒤로 사회는 난리법석이었다. 연일 신문에는 소위 전문가들이 나와 평화의 댐 건설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했으며, 방송들은 평화의 댐 건설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송국 밖에까지 줄을 서서 국민성금 내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당시 국민성금을 낸다는 것은 '빨갱이'가 싫다는 하나의 몸짓이었으며, 나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절대절명의 징표였다. 그 맥락으로 나는 당연히 학교 알림장에 '국민성금 내기'를 적어왔고 어머니께 돈을 받아 으쓱이면서 200원을 국민성금으로 헌납했다. 나의 코 묻은 돈이 안보 수호에 도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몇 년 뒤, 이 자랑스러운 기억은 내게 모멸감으로 다가왔다. 93년 '평화의 댐'에 관한 감사원의 발표를 보며 내가 왜 저 터무니 없는 논리에 속았었는지 허탈했으며, 그들이 우리를 그만큼 만만하게 보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어떻게 그 허술한 거짓말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속을 수 있었는지.
특히 나의 분노는 그 중 소위 전문가 집단에 집중되었는데, 정치인들이야 원래 거짓말과 선동이 그들의 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문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과학과 이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견해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혹여 군사정부의 협박이 있었다면 최소한 침묵을 지켰어야 했으며, 그것도 여의치 않아 부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후 양심선언이라도 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전문가는 없었다. 그들은 침묵했고, 그렇게 세월을 견뎌내었다. 과연 그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살고 있을까? 여전히 전문가를 참칭하여 호가호위 하면서 새치 같은 혀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이런 기회주의자들에 게 이리도 관대한 것일까?
'4대강 사업', 계속되는 전문가들의 부역완벽하게 청산하지 못한 소위 전문가들의 부역의 역사. 결국 이는 27년 후 우리 사회에 따로 또 같은 비극을 몰고 왔는데, MB의 '4대강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단언컨대 '4대강 사업'은 MB정부의 패악질 중 가장 용서받지 못할 것으로 후대에 평가될 것이다. 그것은 현 세대만이 아니라 자자손손 이 한반도에서 태어나는 생명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4대강 사업'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할만큼 애초부터 너무 비상식적이었다. 어찌 물을 가두는데 수질이 더 깨끗해질 수 있으며,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물줄기를 바꿔버리는데 어찌 생태계가 견뎌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MB는 끝끝내 위 사업을 강행했고, 많은 전문가들이 전위에서 정부의 주장을 옹호했다. 무식한 민초의 눈에도 말이 안 되는 사업을 온갖 기만적인 논리로 치장함으로써 정부의 사업 강행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댐을 보라 부르고, 로봇 물고기를 마치 만능열쇠인냥 취급하고, 악취나는 4대강의 수질이 깨끗하다며 곡학아세 하던 그들.
따라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이번 환경연합에서 발표한 '4대강 산업 찬동인사 조사 보고서' 중 관련 전문가의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인의 경우에는 이후 선거나 청문회 등을 통해 자신이 했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책임질 가능성이 있지만, 전문가의 경우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면 또 잊혀진 채 기득권을 그대로 누릴 가능성이 높고 이는 후대에 나쁜 본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이명박 A, 유인촌 A... 4대강 찬동 인명사전)
27년 전 '평화의 댐'에 부역했던 전문가들이 이후 사회적 심판을 받았다면 아무리 MB의 의지가 강했다 한들 '4대강 사업'이 쉽게 진행되었겠는가. 최소한 과학을 운운하지는 못했을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