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달러 환율
한국은행
4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일본 중앙은행 총재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무토는 "우리가 필요한 것은 통화 정책을 더 완화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어 향후 일본의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은 더욱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양적환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12년 9월 유럽중앙은행이 재정위기 국가의 3년 미만 국채를 무제한 매입할 수 있는 유럽판 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이전부터 미국과 환율갈등을 빚어오고 있는 중국의 경우 아직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미국 역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이전보다는 늦추고 있다
. 하지만 미중 간의 환율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크게 남아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위안화는 여전히 상당히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추가적인 절상 노력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특히 위안화의 환율 변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또한 미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롬니는 주요 공약으로 취임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려 할 경우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내수확대를 목적으로 위안화가치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있지만 엔화 가치 등이 가파르게 떨어져 상대적인 위안화가치 인상속도가 빨라진다면 중국 역시 특정 조치를 취할 것이다. 중국이 내수로 무게중심을 이동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중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수출이며, 장기간의 경제위기로 수출여건이 좋지 않아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에 큰 목소리로 반발해 왔던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9월 미국의 3차 양적완화에 대해서도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보호무역 조치"이며 "환율전쟁을 다시 촉발시킬 수 있다"며 쓴 소리를 쏟아낸 바 있다. 브라질은 2010년 이후 헤알화 강세를 막기 위해 해외 투자 자금에 세금을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오고 있다.
2011년 9월 환율 하한선을 1유로당 1.20스위스프랑으로 못 박고 외환을 무제한 사들여 환율 하한선을 사수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스위스를 비롯해 터키는 환율방어의 일환으로 금리 변동 폭 상한선을 낮추는 저금리 정책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서는 등 각 국들이 환율방어에 동참하고 있다.
환율·통화전쟁으로 각 국들 갈등 깊어질 것
이러한 무기한의 양적완화와 그로인한 환율전쟁은 어떤 결과들을 초래하게 될까? 우선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환율·통화전쟁으로 인해 각 국들의 갈등은 깊어질 것이란 점이다. 물론 이러한 환율갈등은 2010년도에도 나타났다. 당시에는 미국의 2차 양적완화와 미국이 중국에게 위안화가치를 높이라는 압력을 가하며 환율전쟁이 촉발된 바 있다. 2013년의 환율·통화 갈등은 2010년보다 그 파고가 더욱 클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경제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각국들의 경제정책 여력이 2010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어있다. 더군다나 재정위기가 본격화 되어있는 상황에서 일정정도의 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각 국들은 더욱 수출확대 전략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당장에 산업경쟁력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손쉽고 신속하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돈을 풀고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둘째, 2010년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신흥국들 간의 갈등이 분출된 것이라면 2013년은 일본을 필두로 소위 '선진국'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2012년 12월 말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는 "미국은 달러화 강세를 유도하고, 유로화도 강세를 유지할 것을" 주문하면서 미국과 유럽연합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삼성경제연구소, '2013년 해외 10大 트렌드', 2013.01.09). 그만큼 자국 내의 대응수단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 간의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갈등의 강도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셋째, 2010년과는 달리 신흥국들의 경제여건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2010년 당시에는 중국 등의 신흥국들은 세계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고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장기화 되면서 신흥국들의 성장세도 꺾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흥국들은 수출 말고는 경제 회복세를 이끌 만한 동력이 마땅치 않다. 소위 '선진국'들의 자국 통화가치 인하 경쟁을 용인할 여력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흥국들은 더 적극적인 환율방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세계적인 물가상승 압력이다. 각 국들이 돈 풀기 경쟁에 나선다면 통화(돈) 가치는 더욱 떨어져 물가상승 압력은 지속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경기가 침체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본격적인 물가상승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압력은 계속 증대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2차 양적완화 때와 같이 풀린 돈이 곡물 시장 등으로 흘러들어가며 제3세계 국가들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 역시 상존한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로 인해 세계적인 곡물가 상승이 나타나며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민중들의 저항이 촉발되었다. 이집트의 경우 친미정권이 무너지기도 했다. 3차 양적완화의 경우 아직 곡물가 폭등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각 국들이 무분별하게 돈을 뿌려댈 경우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만일 각 국들의 돈 풀기 경쟁, 통화가치 인하 경쟁이 곡물가격이나 원자재가격 폭등을 불러올 경우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뿐만 아니라 갈등이 제3세계 국가들까지 번져가게 될 것이다.
환율전쟁 속 '박근혜 호'는?
이러한 각 국들의 자국 통화가치 인하 경쟁 속에서 한국에 대한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 재무부가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정부 당국이 지속적으로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며 "시장이 무질서한 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개입 저지를 위해 압박을 가하겠다"고 노골적으로 공언했다. 심지어 구체적으로 "환율시장 개입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지난해 12월 한국, 중국, 덴마크,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스위스, 대만 등 8개국을 최악의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했다. 환율조작에 들인 돈만큼 해당국 제품에 관세를 물리고, 차후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마이크 미쇼드 하원의원(민주, 메인주)은 한국이 환율을 조작해 미국 기업이 피해를 입고 있다며 미국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아베 정부가 무제한으로 엔화를 찍어내겠다고 공언하면서 2012년 100엔당 1500원까지 올랐던 원/엔 환율은 100엔당 1170원대 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의 주력수출품들이 일본과 겹치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엔화 가치는 한국 수출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는데, 그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엔 환율이 1% 떨어질 때마다 수출도 0.92% 줄어든다고 평가하고 있다(현대경제연구원, "현안과 과제", 201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