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는 살아 있다>(정운현, 책보세)의 책 표지.
정운현의 블로그 '보림재'
그는 20여 년간의 언론사 생활을 하는 중에 임종국 선생을 만난 것을 계기로 친일파 연구에 매진한다. 그 결과 1980년대 이후 친일파와 관련된 책 10여 권을 세상에 내놓는다.
<친일파><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증언 반민특위> 등이 대표적인 업적이다. <친일파는 살아 있다>는 그 연구물들의 최종적인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앞서 소개한 2005년의 친일진상규명위에서 3년간 사무처장을 맡으면서 일제 잔재 청산에 힘을 보태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 책에는 우리도 모르게 잘못 쓰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용어와 역사적인 지식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담고 있다. 일제가 강제적으로 우리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의 '을사조약'이 그 한 예다.
'을사조약'은, '싸늘하고 스산한 기운이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을씨년스럽다'의 어원과 관련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민족에게는 역사적인 불행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이 '조약'으로 한국 정부(당시 대한제국)는 일본의 중개를 거치지 않은 그 어떤 국제 조약이나 약속도 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 통감(統監)이 언제든지 조선의 정사에 관여할 수 있는 특권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을사조약'은 1910년의 한일병탄(韓日倂呑)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과서는 이를 동등한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약속을 의미하는 '조약'으로 기술한다. 그러나 실상 이 '조약'은 일본의 강요에 의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궁궐 주변에 무장한 일본군을 배치하고 대신 한 명 한 명을 집요하게 추궁하기도 했다. 따라서 '을사조약'은 '억지로 맺은 조약'을 의미하는 '을사늑약'으로 말해야 역사적으로 그 진실을 제대로 알릴 수 있게 된다.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 또한 마찬가지다. 이 '조약'은 우리나라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은 중대한 사건이다. 또한 을사늑약처럼 강제적으로 맺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합쳐서 하나가 되었다는 식의 몰역사적인 명칭을 쓰고 있다. 따라서 '한일병합조약'은, '남의 재물이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빼앗아 제 것으로 만듦'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병탄'을 넣어 '한일병탄'으로 고쳐 부르는 것이 좋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역사는 그저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에 부단히 영향을 끼치면서 미래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죽어버린 사건의 집합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다.
일제 잔재 청산, 여전히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역사적 과업'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제 잔재 청산은 여전히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할 가장 중차대한 역사적 과업의 하나다. 일그러진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는 일은 무뎌진 민족정기를 똑바로 세워주는 구실을 한다. 이것은 편협한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민족이 또다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좌표를 설정해 준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찌꺼기는 분명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민족 행위자들을 처벌한 다른 나라의 사례는 두고두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한 여인이 삭발한 머리를 한 채로 아기를 안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구경하면서 뒤따라온다. 이 여인은 프랑스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나치 점령 시절, 독일군과 관계를 가진 그녀는 프랑스가 나치로부터 해방된 후 이렇게 '시민 재판'을 통해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우리나라의 반민특위가 688명의 반민 피의자를 취급했다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하지만 이 688명 중에 특별검찰부로 송치된 건수는 559건에 불과했다. 그 599건 중에서도 정식으로 기소된 건수는 총 221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5개월여간의 특별재판부 재판에서 사형 1, 무기 징역 1, 체형 13, 공민권(오늘날의 시민권이나 국민권) 정지 18, 형 면제 2, 무죄 6명 등 총 41건의 판결이 나왔다. 실제 기소된 건수의 0.6%만이 재판을 받은 셈이다. 각각 사형과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2명도 1950년 봄까지 모두 감형 등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오늘날 나치 청산의 전범 국가로 불리는 프랑스는 달랐다. 1940년 6월 26일 나치에 점령된 프랑스는 이후 4년 2개월이 지난 1944년 8월 25일에 파리를 해방한다. 프랑스의 반민족 행위자는 바로 이 시기의 나치협력자(대독협력자)를 말한다.
프랑스의 나치 청산은 해방 이전부터 실시하였다. 파리 해방 이전에 레지스탕스 조직이 실시한 '거리의 정의' 재판이 대표적이다. 이 비상군법회의 형식의 재판을 통해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8000~1만 명을 처형한다.
해방 이후의 나치 협력자 청산은 협력자재판소, 시민재판부, 고등협력자재판소 등의 세 개 군데서 진행된다. 이 중에서 1944년부터 4년간 실시된 협력자 재판소의 재판 건수는 총 5만 5331건에 이르렀다. 이 중 6700여 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 가운데 767명이 처형되었다.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을 합한 수도 2만 2300여 명에 달한다. 시민재판부에서도 총 6만 9천여 건을 취급하여 이 중 4만 6600여 명의 공민권을 박탈하였다.
이렇게 해서 전후 프랑스에서는, 총 4년의 점령 기간에 나치 협력을 한 사람 32만여 명이 협력자 혐의를 받았고, 실제 12만 5000여 명이 재판을 받았다. 그중 9만 5000여 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로도 프랑스는 1980~1990년대에 '반인도죄' 재판을 진행해 친나치 행각을 벌인 사람들을 색출하고 종신형을 선고하기도 하는 등 과거 청산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프랑스 단 4년 피점령 기간에도 30여만 명 반민족 행위자 색출일제 강압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이다. 하지만 우리가 실권을 빼앗긴 1905년의 한일병탄, 더 나아가 1876년의 한일수호조약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40년, 70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하에 있었던 셈이 된다. 그만큼 친일 모리배는 도처에서 엄청난 숫자로 존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앞에서 살핀 것처럼, 짧은 반민특위 활동 기간에 친일 혐의로 재판을 받고 실형을 선고받은 숫자는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프랑스는 단 4년간의 피점령 기간에도 30여만 명이 넘는 반민족 행위자를 색출하고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수만 명에게 실형을 선고하여 사법적인 청산을 이루었고, (위의 여인과 같은) 사소한(?) 나치 협력 행위에도 역사적인 처벌을 가하는 작업을 벌였다.
전후 프랑스에서 나치 협력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6763명과 실제 처형된 767명을 눈여겨보라. 우리나라는 프랑스보다 9배나 긴 36년 동안 일제의 식민 통치를 당했다. 하지만 친일 협력의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가 단 한 명뿐이었다. 더군다나 그것은 실제 집행되지도 않았다.
지난해 가을, 정운현 선생의 강연을 듣고 난 며칠 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면서 일제 청산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반민특위'라는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그 결과가 어땠는지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잔재 청산을 비교해 말해주자 깜짝 놀라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일을 이념 대결로 몰고 가려는 이들이 있다. 지나버린 과거에 매달릴 게 아니라 미래를 보고 살자며 간절하게 짐짓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과거를 바로 세우지 않고서는 그 어떤 올바른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없다. 우리가 우리의 후예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올바른 역사관도 바로 이런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조지 오웰이 그의 소설 <1984년>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한 말은 역설적으로 강력한 진실을 담고 있다. 현재를 쥐고 있는 권력이 잘못된 과거에 책임이 있을 경우, 역사 왜곡이나 은폐는 현재를 넘어 미래를 쥐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된다.
처벌받지 않은 친일파에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많은 지배층이 과거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역사는 결코 지나간 역사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조금은 시끄러울지라도 우리가 '역사 전쟁'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까닭이다.
친일파는 살아있다 - 자유.민주의 탈을 쓴 대한민국 보수의 친일 역정
정운현 지음,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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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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