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지그문트 바우만, 2012, 동녘)의 표지 사진.
동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2012, 동녘)은 근대성에 대한 깊은 천착과 성찰로 유명한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1925~현재)의 책이다.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진 그가 이탈리아의 한 여성 주간지(<여성들을 위한 라 레푸블리카>)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썼던 편지 형식의 기고문들을 수정, 편집해서 엮은 것이다.
모두 44편의 편지글이 실린 이 책에서 바우만은, '액체 근대'로 비유하고 있는 이 불확정성의 시대에 넘치는 지식과 정보와 관계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 44편의 편지글에 등장하는 제재들은 삶의 근본 철학에서부터 공포에 대한 공포, 해고되는 사람들, 세대 차이, 신용카드, 신종 플루 공포, 건강 불평등에 이르기까지 정치, 사회, 문화 등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책의 표제이기도 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편지 2'로 실려 있지만, 그러한 바우만의 주제 의식을 가장 압축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첫 번째 편지로 볼 수 있다.* 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등장하는 한 소녀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미국 고등교육신문의 웹사이트에 올라와 있다는 그 소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한 달에 3000여 건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계산을 해 보면 그 소녀는, 문자 메시지를 매개로 하여 그 한 달 간 매일 같이 10분 이상은 결코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던 셈이다. 대체 그 어떤 것이 소녀를 그 무지막지한 문자 메시지의 세계로 인도한 것일까?
아마도 소녀는 이제 다른 친구들이 없을 때, 과연 사람들이 자기 혼자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하는지, 혼자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웃거나 울어야 하는지 거의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24, 25쪽)그 소녀처럼, 우리는 고독을 잃어버리면 혼자서 지낼 수 있는 '기술'(?)을 배울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아니 '기술'이 아니라 '태도'나 '자세'라고 해야 할까? 실상 우리가 진정으로 깊은 외로움에 빠져 보아야, 그리고 그 외로움에 홀로 당당히 맞서 보아야 진정으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외로움에 빠질 시간이 없다. 여유가 없다. 아니, 그럴 마음이 애시당초 없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이나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수많은 연결 통로가 컴퓨터와 휴대 전화기 속에 널려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타인이나 세상으로 향할 수 있는 관계의 통로는 말 그대로 범람이다.
그러면서도 많은 이가 외롭다고 아우성이다. 삶의 외로움과 현실의 팍팍함에 상처를 입었다며 위로와 도움을 청한다. '제발 제게 위로와 도움을 주세요. 상처 받은 저에게는 따뜻하고 평안한 힐링이 필요해요. 혼돈스러운 이 세상에서 저를 이끌어줄 멘토가 되어 주실 분은 어디 안 계신가요?'
이렇게 넘쳐나는 관계의 한켠에서는 서로 좀 더 소통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참된 인간적 소통이 없기 때문일 터.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소통조차도 강박으로 다가올 때가 없지 않다. '민주주의'와 '국민'과 '교육'이라는 말들이 그랬던(혹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관계'와 '소통' 또한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서 가장 타락한 단어들의 목록에 추가될지도 모른다. 말로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해서는 될 일이 아니지 않은가.
교실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걸음을 옮기면 된다. 그러면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면서 그 미묘한 표정과 어조의 변화에 눈과 귀의 촉수를 들이댄 채로 서로 온몸으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아이들이 휴대 전화로 문자를 주고 받는다. 휴대전화의, 한 뼘이 될까 말까 한 가상의 문을 여는 대신 실재하는 문은 육중하게 닫아 놓는다. 심지어는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을 향한 문조차도!
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구순이 가까운 노학자의 사려 깊은 지혜를 참조하자. 그가 즐겨 인용하는 시지푸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카뮈(Albert Camus, 1913~1960)가 어려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지혜만큼은 두고두고 우리 삶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정말 좋겠다. 마흔 다섯 해를 살아온 내 무디어진 팔과 등에 순간 길고 굵은 소름을 돋게 한, 시지푸스와 프로메테우스가 등장하는 '편지 44'의 깊은 감동을 여러분도 느껴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편지 1'은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다. 이 글은 책 전체의 서문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될 듯하다.
** 시지푸스(Sisyphus)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시지푸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로, 저승 산의 언덕에서 끝없이 돌을 밀어올리는 벌을 받아 구원받지 못하는 영원한 죄수의 표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로메테우스 또한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로, 신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대가로 코카서스 산중의 바위에 묶인 채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그 간은 끊임없이 다시 생성된다) 모진 형벌을 받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저, 조은평 외 역(2012),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동녘. 값 1만6000원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동녘,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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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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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문자메시지 3000건, 소녀는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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