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이곳은 민영 방식의 재개발 사업지다.
이주영
산 65번지가 곧 재개발될 것이란 이야기가 떠돌던 2006년 어느 날 밤. 김씨는 둔탁한 망치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들짝 놀라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동네 입구 쪽에 있는 집의 벽을 부수는 중이었다. 쿵쿵대는 망치 소리와 함께 누군가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김씨가 이웃에게 전해들은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새로 바뀐 토지소유자인 A 민영주택 건설회사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무허가 주택들을 상대로 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 동네 대부분의 집은 무허가주택이므로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나가야만 하는 처지다.
세입자들은 물론 가옥주도 철거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강제철거' '재개발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산동네의 전세는 200~500만 원 수준이다. 대부분 세입자인 주민들은 이 돈으로 기존에 살던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다.
A사가 서울시 지정의 재개발이 아닌 민영 방식의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계획도 문제였다. 가옥주를 중심으로 조합이 이뤄지는 재개발의 경우 무허가 세입자도 주거이전비나 임대주택 입주권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민영주택사업자의 경우 세입자들이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가옥주 역시 무허가주택일 경우 보상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500~1000명의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은 몇 차례 동네를 찾아 '마구잡이식' 철거를 강행했다. 이들은 집 벽을 부수고 살림살이를 치우고 사람을 쫓아냈다. 60~70대 노인들이 멱살을 잡혀 패대기쳐지거나 마구 두들겨 맞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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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착공에 들어갈 것처럼 진행된 철거에 비해, 재개발 사업의 속도는 더뎠다. 2007년 5월 서울시가 산 65번지를 주택재개발 정비 '11구역'으로 지정하자, 토지소유자이자 개발시행사인 A사는 곧바로 동작구청이 추진하는 재개발에 반대하며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관련기사 보기). 2010년 7월 대법원이 A사의 손을 들어주기 전까지 3년이란 시간 동안 재개발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이후 2011년부터 민영주택 건설 사업으로 동네 개발이 다시 추진됐지만 A사의 서류 미흡 문제가 터지면서 최근까지도 재개발이 지연돼왔다.
진전 없는 재개발 사업 때문에 300여 가구가 살던 이 동네에서 270여 가구가 떠나거나 쫓겨났다. 동작구청이 파악하기로는 현재 30가구만 남아있다. 김씨는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손에 꼽을 것"이라고 했다. 동네 입구부터 중턱 사이 주민 수만 해도 김씨와 70대 노인이 전부였다.
"다들 빚내서 겨우 이사 갔다고 하던 대요. 그 돈 가지고 어디를 갈 수 있겠어요. 쯧쯧." 꿈은 '세입자 주거권 보장'... "편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