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비명과 망치소리..."이런 날벼락이"

[용산참사는 진행형③]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에 가다

등록 2013.01.17 17:40수정 2013.01.17 17:40
0
원고료로 응원
2009년 1월 20일 새벽의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졌다. 4년이 흘러도 그 시간에 묶여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평범한 주부는 '거리의 시위자'가 됐고, 중국집 사장은' 테러범'이라는 낙인이 찍혀 돌아왔다. 4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는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의 실제를 살펴본다. 세번째 기획으로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철거촌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의 한 주택이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된 모습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의 한 주택이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된 모습이주영

기상청에서 "다시 강추위가 시작된다"고 예보한 16일 오전. 재개발 사업지인 서울 동작구 상도4동 산 65번지 일대 11구역에는 싸라기눈이 내렸다. 철거로 폐허가 된 집들과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 위로 눈이 쌓였다. 

마을에 들어서도 한동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동네에 옹기종기 모인 주택 대부분은 형태만 덩그러니 남았다. 벽마다 뚫린 구멍 사이로 바라본 집 안에는 부서진 석면 콘크리트와 목재가구 잔재, 주방용품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김영희(50)씨는 폐허로 변한 집들 사이에서 살고 있다. 연탄을 때는 덕분에 방바닥에는 온기가 돌지만 벽 사이로는 외풍이 분다. 바로 옆집마저 헐린 이후에는 바람이 더욱 거세게 집안으로 들어온다. 결국 기온이 영하 11도 밑으로 내려간 이번 한파 때는 수도가 얼어터졌다. 김씨의 아들들이 와서 고쳐줬지만 여전히 물이 새는지 김씨 집앞부터 헐린 옆집 바닥까지 빙판이 생겼다.

김씨는 20여 년 전 결혼하자마자 전세 500만 원으로 이 동네에 들어와 살림을 차렸다. 그는 남편과 함께 가내수공업으로 오토바이 가죽장갑을 만들어 판 수입으로 두 아들을 길러냈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만족하며 살았어요. 이 동네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었거든요. 재개발 전까지는."

재개발 지연되는데... '마구잡이' 강제철거로 300여 가구→30가구로 줄어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이곳은 민영 방식의 재개발 사업지다.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이곳은 민영 방식의 재개발 사업지다.이주영

산 65번지가 곧 재개발될 것이란 이야기가 떠돌던 2006년 어느 날 밤. 김씨는 둔탁한 망치 소리에 잠에서 깼다. 화들짝 놀라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동네 입구 쪽에 있는 집의 벽을 부수는 중이었다. 쿵쿵대는 망치 소리와 함께 누군가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김씨가 이웃에게 전해들은 소식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새로 바뀐 토지소유자인 A 민영주택 건설회사가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무허가 주택들을 상대로 철거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것. 동네 대부분의 집은 무허가주택이므로 김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나가야만 하는 처지다.

세입자들은 물론 가옥주도 철거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강제철거' '재개발 반대'를 외치기 시작했다. 당시 산동네의 전세는 200~500만 원 수준이다. 대부분 세입자인 주민들은 이 돈으로 기존에 살던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다.


A사가 서울시 지정의 재개발이 아닌 민영 방식의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려는 계획도 문제였다. 가옥주를 중심으로 조합이 이뤄지는 재개발의 경우 무허가 세입자도 주거이전비나 임대주택 입주권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민영주택사업자의 경우 세입자들이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가옥주 역시 무허가주택일 경우 보상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500~1000명의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은 몇 차례 동네를 찾아 '마구잡이식' 철거를 강행했다. 이들은 집 벽을 부수고 살림살이를 치우고 사람을 쫓아냈다. 60~70대 노인들이 멱살을 잡혀 패대기쳐지거나 마구 두들겨 맞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관련기사 보기).

당장 착공에 들어갈 것처럼 진행된 철거에 비해, 재개발 사업의 속도는 더뎠다. 2007년 5월 서울시가 산 65번지를 주택재개발 정비 '11구역'으로 지정하자, 토지소유자이자 개발시행사인 A사는 곧바로 동작구청이 추진하는 재개발에 반대하며 구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관련기사 보기). 2010년 7월 대법원이 A사의 손을 들어주기 전까지 3년이란 시간 동안 재개발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이후 2011년부터 민영주택 건설 사업으로 동네 개발이 다시 추진됐지만 A사의 서류 미흡 문제가 터지면서 최근까지도 재개발이 지연돼왔다.

진전 없는 재개발 사업 때문에 300여 가구가 살던 이 동네에서 270여 가구가 떠나거나 쫓겨났다. 동작구청이 파악하기로는 현재 30가구만 남아있다. 김씨는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손에 꼽을 것"이라고 했다. 동네 입구부터 중턱 사이 주민 수만 해도 김씨와 70대 노인이 전부였다.

"다들 빚내서 겨우 이사 갔다고 하던 대요. 그 돈 가지고 어디를 갈 수 있겠어요. 쯧쯧."

꿈은 '세입자 주거권 보장'... "편하게 살고 싶다"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에서 사는 철거민 김영희씨의 옆집 바닥. 김씨의 집 수도에서 세어나온 물이 재개발 사업을 위한 철거로 폐허가 된 옆집까지 흘러들어 꽁꽁 얼었다.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에서 사는 철거민 김영희씨의 옆집 바닥. 김씨의 집 수도에서 세어나온 물이 재개발 사업을 위한 철거로 폐허가 된 옆집까지 흘러들어 꽁꽁 얼었다.이주영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철거민 김영희씨가 자신이 기르는 개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17일 서울 동작구 상도4동 11구역 철거민 김영희씨가 자신이 기르는 개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이주영

6년간 상도4동 11구역에서 버티며 살아온 김씨는 앞으로도 동네를 떠날 생각이 없다. 무허가주택에 사는 세입자라는 이유만으로 속절없이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김씨는 집 아래 쪽에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상도4동 철거민대책위원회'(아래 전철연 철대위) 사무실을 두고 A사를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지만 상황은 어렵다. 회원은 철대위원장인 김씨 혼자다. 원래 20여 명에서 시작했지만 개발이 멈추고 다시 시작하고를 반복하면서 다들 생계문제 등으로 빠져나갔다.

게다가 김씨의 배우자마저 현재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남편 천주석씨는 '용산참사' 당시 용산 재개발 4구역 세입자를 도우러 망루에 올랐다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김씨 옆에는 개 17마리가 전부다. 20대 후반인 두 아들은 독립했다. 식당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고 일당 6만5천 원을 받으면 생활비와 개사료 값으로 쓴다.

김씨의 바람은 하나다. 세입자로서 삶을 인정받은 다음, 임시거처 마련과 임대아파트 입주 등의 거주권을 보장받는 것.

"그 정도는 받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편하게 살고 싶거든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옆집 때문에 불안해하고, 남들이 몰래 버린 쓰레기 냄새를 참아가며 사는 게 힘들어요. 너무 큰 꿈인가요? 하긴 6년 동안 싸워도 달라진 게 없으니... 구청에서도 이제 보러 안 와요. 정치인들도 선거철 사진만 찍고 가지, 그 뒤로는 아무 소식도 없어요."

현재 A사는 서류 미흡 문제를 해결해 지난해 12월 13일부터 민영주택 건설사업 절차를 밟는 중이다. 동작구청은 "상도4동 11구역은 서울시 재개발 구역 지정에서 해제됐다, 철거와 세입자 보상 문제는 사업자 소관"이라고 답했다. 국회에서는 세입자의 권한을 강화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과연 세입자 김씨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철거민 #상도4동 #용산참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