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당선인이 지난 7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나는 한 번도 보수정당에 투표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나는 문재인 캠프의 말석에서 복지공약, 특히 노후소득공약을 만드는데 참여했다. 하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제기한 기초노령연금의 2배 인상과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는 극심한 한국의 노인빈곤 문제를 단기간에 완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여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방안은 사회적 연대를 중시하는 '진보'의 가치에 부합하며 개인적으로 지난 10여 년간 줄기차게 주장해 온 학문적 소신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제도와 기초노령연금의 관계는 워낙 복잡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 국민연금기금 활용론까지 더하면 일반인들은 거의 이해가 불가능하다.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도 엉뚱한 얘기를 하기 쉽다. 논란의 와중에서 '연금 망국론', '세대 갈등론', '이건희 회장 기초연금 지급설' 등 소위 '괴담' 수준의 논리와 수치가 횡횡하고 있다. 때로는 진보가 보수의 논리를 대변하고 보수가 진보를 대변하는 이상한 상황도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 공약의 이행 여부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연금문제를 어떤 시각에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첫째,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은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다박근혜 공약에 따라 올해부터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인상하여 전체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면 7조 원이 추가되어 총 13조 원의 돈이 필요하다. 물론 70% 노인에게만 지급하면 추가되는 돈은 5조 원을 약간 넘는다. 이 예산이 곧 수십조 원으로 늘어나 재정적으로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이 기초노령연금 인상을 반대하는 핵심적인 논리이다. 진보적 학자들마저도 이러한 '연금 망국론'과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
13조 원이면 큰돈처럼 보이지만 작년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1300조 원의 1%에 지나지 않는다.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공적연금에 쓴 돈은 GDP 대비 2.1%로 선진국 중 거의 꼴찌이다. 국제적으로 연금을 적게 지출하는 일본만 해도 2009년에 GDP 대비 10.1%를 지출했다. 일본이 한국의 GDP와 같다면 1300조 원의 10.1%인 131조 원을 연금으로 썼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노인 10명 중 5명이 빈곤상태에 있는 이유는 공적연금을 받는 사람이 적고, 그나마도 매우 적은 액수의 연금을 지출하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인상하고 노인 100%에게 지급할 경우 재원도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2011년 인구의 11.8%인 590만 명의 노인이 2050년에는 1900만 명으로 늘어나 인구의 약 40%가 된다. 정부자료에 의하면 2050년 1900만 명 노인 전체에게 2배로 인상된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면 GDP의 약 4.3%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70% 노인에게만 지급하면 GDP의 3.0%가 되지만 다 준다고 가정하자). 앞으로 37년 뒤인 2050년에 GDP의 4.3%를 기초연금으로 쓰면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것인가?
여기서 국민연금으로 지출되는 돈의 크기를 추가해 보자. 정부자료는 2050년에 국민연금 지출액이 GDP의 약 5.5%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초노령연금 지출액 4.3%와 국민연금 지출액 5.5%를 합하면 2050년에 최대 GDP의 9.8%를 연금으로 지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의 40%인 노인에게 GDP의 9.8%를 연금으로 나누어주면 재정이 파탄되는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자.
유럽국가들은 2010년에 노인인구가 평균 15%일 때 연금으로 GDP의 11%를 지출했지만 나라가 망했다는 소리는 없다. 유럽연합 보고서에 의하면 2050년 유럽국가들의 노인인구는 평균 25% 정도가 되는데 이때 지출되는 연금총액은 GDP의 약 13%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재정 규모는 경제성장률과 생산성 증가를 감안할 때 부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유럽학자들의 주류적 의견이다.
따라서 노인인구가 40%가 되는 2050년에 연금으로 GDP의 9.8%를 지출하면 재정이 거덜 나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주장은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앞으로 37년 뒤인 2050년에 가서야 우리나라는 유럽국가들이 2000년대 초반에 지출한 수준의 연금을 쓰게 되는 것이다. 2050년에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1900만 명의 노인에게 GDP의 9.8%를 배분한다는 것은 1인당 받는 연금액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연금지출로 국가재정 불안정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노인 1인당 연금액이 너무 적어 대량의 노인빈곤이 지속될 수 있음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후세대의 연금 부담은 결코 과중하지 않다공적연금은 세대간 연대와 갈등이라는 양 측면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부모에게 주는 용돈이 너무 커 자식이 부담을 느끼면 가정불화가 생기고 적절하면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아름다운 연대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연금비용이 너무 커 젊은 인구의 부담이 커지면 세대간 갈등이 나타나고 적절한 수준이면 노인을 젊은 인구가 부양하는 전통적인 세대간 연대가 이루어진다. 공적연금에서 연대와 갈등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과 동일하게 국가가 운영하는 연금의 본질은 젊은 세대가 생산한 부의 일부를 노인 세대에게 배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를 배당하는 것이 적절한가? 노인 입장에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젊은 사람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무한정 떼어 줄 수는 없다. 노인 부양을 위해 소득의 일부를 떼어주는 것이 바로 연금 보험료이고 보험료가 모자라면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2007년에 독일 노인은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했는데 이들에게 지급된 연금이 GDP의 10.4%를 차지했다. 이중 연금보험료로 충당된 부분은 7.2%이고 모자라는 3.2%는 세금으로 충당했다.
그렇다면 2050년에 젊은 세대가 보험료와 세금으로 부담해야 할 연금 총액 GDP의 9.8% 때문에 젊은 세대는 허리가 휘어질까? 앞에서 본 것처럼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인들에게 충분한 연금을 배당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연금문제로 세대간 갈등이 벌어지면 젊은 세대가 과도한 부담을 해서가 아니라 노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어서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때문에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올리는 것은 후세대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기 보다는 사회적 부를 적게 배당받는 현세대 노인에게 그야말로 최소한의 연금을 배당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백보 양보하더라도 미래 세대는 현 세대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모두 물려받기 때문에 노인을 위해 연금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한다고 하여 결정적인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주택 하나만 예를 들어 보자. 한국은 이미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었다. 이 주택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상속된다. 우리 자식들은 우리 세대처럼 집하나 장만하기 위해 모든 소비를 줄이고 소득의 대부분을 집에 쏟아 붓지 않아도 된다. 집이라는 큰 재산을 상속받는 젊은 세대가 노인들을 위해 연금 보험료나 세금을 조금 더 부담한다고 하여 허리가 휘는 것도 아니고 불공평한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 세대가 건설한 도로와 공항, 각종 문화시설 등을 미래 세대가 다 물려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인 연금보험료 부담은 결코 크지 않은 것이다. 즉, 미래 세대의 연금보험료 부담은 후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의무이며 이것이 바로 세대간 연대인 것이다. 지금의 노인 세대에게 용돈 수준의 기초노령연금도 주지 않으면서 나중에 미래 세대에게 나를 부양하기위해 연금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이야말로 노인부양의 세대간 연대라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원칙을 깨는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기금은 기초노령연금의 재원으로 사용될 수 있다국민연금기금은 현재 400조 원이 쌓여 있고 매년 약 40조 원의 돈이 추가로 생긴다. 박근혜 정부가 끝나는 2018년에는 약 600조 원이 쌓일 것이다. 매년 새로 생기는 40조 원의 일부인 3~4조 원을 떼어 기초연금으로 쓰는 것에 대해 보험료도 안 낸 노인세대의 '도둑질'이라는 주장도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저축한 목돈의 일부를 부모에게 용돈으로 주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체 국민이 저축한 막대한 국민연금기금의 극히 일부를 전체 노인들에게 주는 것은 '도둑질'일까?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기초연금의 재원으로 쓰는 것을 '도둑질'로 생각하는 것은 국민연금을 내가 낸 돈을 돌려받는 개인연금이나 개인저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개인저축제도가 아닌 노인부양의 세대간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국민연금기금의 일부를 노인 세대에게 기초연금으로 배당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홍길동이 25살에 국민연금에 가입하여 65세까지 40년 동안 총 5천만 원의 보험료를 냈다고 하자. 이 사람이 평균수명인 80세까지 생존하여 15년 동안 연금을 받으면 약 1억 원 가량의 연금을 받는다. 이 금액은 물가가치나 이자 등 모든 것을 고려해 계산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평균수명까지만 살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다 자기가 낸 돈보다 약 2배 가량의 돈을 가져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국민연금을 자기가 낸 돈을 늙어서 찾아가는 것이라면 홍길동은 5천만 원을 냈기 때문에 5천만 원만 받아가야 한다. 한 달에 60만 원씩 연금을 받는다면 가정하면 이 사람은 7년 만에 5천만 원을 다 찾아가게 된다(5천만 원/60만 원/12개월=6.9년).
때문에 홍길동이 낸 돈 5천만 원을 전부 돌려받는 시점은 65세부터 7년이 지난 72세가 된다. 국민연금이 개인 저축이면 자기가 낸 돈 5천만 원을 연금으로 돌려받은 이후인 73세부터 홍길동에게는 연금을 주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그 이후에도 홍길동이 사망할 때까지 계속 연금을 지급한다. 그러면 73세 이후에 홍길동이 받는 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여기에 바로 세대간 연대를 전제로 설계된 국민연금의 비밀이 있다.
홍길동이 73세 이후 추가로 받게되는 연금은 바로 우리의 자식세대, 즉 미래세대가 부담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국민연금에 가입한 초창기 세대는 낸 돈보다 휠씬 많은 돈을 받게끔 설계되었고 후세대로 갈수록 내는 돈은 많고 받는 돈이 줄어들게끔 설계된 것이다. 그러나 현세대들은 여전히 낸 돈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되어 있고 그 부담은 후세대가 짊어지게 되어 있다. 여기서 국민연금이 후세대를 '갈취'하는 제도라는 자칭 전문가들의 비난이 쏟아진다. 이런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세대간 연대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세대간 연대가 필요 없고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된다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사고를 가진 시장근본주의자들이다.
현재의 65세 이상 '할아버지 세대'는 역사적으로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왔다. 이들은 1920~1940년대 농업사회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시대에 고된 노동을 하다 먹고 살만해진 90년대 이후 은퇴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 세대'가 한참 일할 시기에는 국민연금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가입할 수도 없었고(국민연금은 1988년에 시작되었다) 자식들이 노후를 챙겨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노후 준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 30세에서 50세인 '부모세대'들이 '할아버지 세대'에게 사적으로 용돈을 드려 부양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부모세대'는 자식들이 노후를 챙겨주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즉 '부모 세대'는 사적으로 용돈을 드려 '할아버지 세대'를 부양해야 하고 공적으로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여 자신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나 10~20대인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가 국민연금을 통해 어느 정도 노후를 준비했기 때문에 '부모 세대'가 '할아버지 세대'에게 했던 만큼의 사적부양(용돈 지급)을 하지 않아도 된다. 즉 '자식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노인부양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상당히 완화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간의 노인부양 부담의 공평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너무 간단하다. '할아버지 세대'는 '부모 세대'에게 최소한의 부양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기초노령연금 지급과 인상), '부모 세대'는 자신의 과중한 이중부담을 '자식 세대'에게 나누어질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국민연금의 후세대 부담). 반대로 얘기하면 '자식 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함으로써 '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할 역사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홍길동이 받는 1억 원 중 5천만 원은 '부모 세대'가 적립한 돈으로 받는 것이고 나머지 5천만 원은 '자식 세대'의 추가적 부담을 통해 받아야 '할아버지', '부모', 그리고 '자식' 세대간에 노인부양의 공평성과 사회적 연대가 확보되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노인의 집단적 부양을 위한 사회공동의 저축이라면 이 돈의 일부를 현재의 '할아버지 세대'를 위해 쓰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낸 국민연금 보험료를 '도둑질'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사적으로 용돈을 드리는 대신에 사회가 공동으로 노인에게 용돈을 드리는 것이 된다. 기초노령연금을 2배로 늘리고 이를 국민연금기금에서 충당하면 개인이 월급에서 직접 드리는 용돈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에서 기초노령연금이 지급된다면 그 금액은 결코 많지 않다. 국민연금보험료가 한 해에 30조 원 걷히고 이중 3~4조 원을 기초노령연금 재원으로 사용한다면 우리가 내는 보험료의 10% 정도만을 노인들에게 드리는 것이다. 현재 보험료를 내고 있는 '부모 세대'들의 연금은 '자식 세대'들이 내는 국민연금보험료와 세금으로 충당하면 된다. 이것이 세대간에 공평한 노인부양부담이다.
넷째, 국민연금기금 일부를 소비해 크기를 적당히 유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