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신문 칼럼'자민련 바람'이 충청도를 휩쓸던 1990년대 중반, 나는 서산 태안 홍성 청양 등지의 지역신문들과 서산의 지역잡지에 신지역감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설파하는 글을 많이 썼다. 집단 최면과 집단 몰이성에 맞서 용감히 싸웠던 것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지요하
단편 <한 번도 지지 않은 사람>은 주인공이며 화자인 '나'가 어느 노인에게서 이상한 전화를 받는 것으로부터 얘기가 시작된다.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노인이었다. 몸이 불편한 것 같은 노인은 지역신문에 실리는 내 칼럼들을 매번 유심히 읽는다고 했고, 내 글을 읽은 것 때문에 뭔가 의논을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안면도 창기리에서 살고 있다며 꼭 한 번 찾아와 달라는 부탁이었다.
불원간 한 번 찾아가 뵙기로 약속을 한 나는 최근 수년 동안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전화폭력들을 떠올린다. 서산과 태안의 지역신문들에 쓰는 글들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전화폭력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자민련이라는 정치집단이 석권하고 있는 충청지방의 '신지역감정바람'과 관련하는 일이었다. 1961년 5·16쿠데타와 함께 등장했던 부여 출신 김종필이 1990년의 3당 야합으로 출현한 민자당 안에서 퇴진 압력을 받게 되자 이에 반발하여 1995년 3월 충청지방을 기반으로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한 후 충청지방은 완전히 자민련 세상이었다.
나는 지역신문들에 글을 쓰면서 자민련 바람과 맹렬히 싸웠다. 소위 '녹색바람'으로도 불리는 자민련 바람, 충청도 신지역감정의 부당함을 나는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파하곤 했다. 그러며 나는 자민련의 정치 수명을 10년으로 예상했다. 내 예상은 훗날 정확하게 들어맞았지만, 내 예언들이 지역신문들에 공표되자 정체불명의 여러 남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 갖가지 폭언을 퍼붓곤 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폭력전화들은 내가 일하는 지역잡지사와 우리 집으로 집중되었고, 시도 때도 없었다. 잦은 전화폭력에 내 노모는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고, 노인뿐만 아니라 나와 아내도 전화기 신호음이 울릴 때마다 지레 공포감을 안아야 했다.
내게 전화폭력을 가한 사람들 중에는 안면도 백사장 항에서 산다는 청년도 있었다. 그는 1995년의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이 충청권을 싹쓸이하여 충청도의 자존심을 한껏 세웠다는 생각으로 승리감에 젖어 축배를 들던 중 내 글을 읽었다고 했다. 너무도 분통이 터져 전화를 걸었다며 50고개를 바라보는 내게 무지막지한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인내하면서 내 글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1년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보고 그때도 오늘과 똑같은 생각이 들면 다시 전화하라는 시덥지 않은 말만 했을 뿐이었다.
나는 하루 시간을 내어 버스를 타고 안면도 창기리의 그 노인을 찾아가면서 다시금 그 청년을 떠올린다. 누군지 모를 그 청년의 전화를 받은 때가 이태 전인데, 그 후 그 청년에게서는 전화가 없었다. 나는 움트기 시작하는 '박정희 향수'에 대한 생각, 앞으로 10년쯤에는 우리 사회에 '박정희 향수'가 창궐하게 되리라는 글을 써서 전화폭력에 시달렸다는 어느 대학교수의 얘기도 떠올리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그리고 걸어서 그 노인 집을 찾아간다. 병색이 완연한 그 노인과 만나 막걸리를 대접받으며 얘기를 나눈다. 그 노인이 나를 만나고자 한 연유를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인은 평생 동안 견지해온 자신의 선거투표 행태를 고백하면서 "마지막 투표일지도 모를 1997년의 제15대 대선만큼은 제대로 투표를 하기 위해 조언을 듣고자" 내게 전화를 했노라고 했다.
노인은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선거들에 빠짐없이 투표를 해왔는데, 한 번도 사표(死票)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투표는 모조리 승표(勝票)가 되어서 매번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고 했다. 처음부터 누가 이길 것인가 나름대로 가늠을 해보고 이길 것 같은 후보에게 표를 주다 보니 재미가 들려서 매번 그렇게 투표를 하게 됐더라는 얘기였다. 그는 그 사실을 어깨 으쓱거리며 자랑도 많이 했노라고 했다.
그런 그가 마지막일지 모를 투표만큼은 깊이 생각을 해보고 제대로 투표를 하기 위해 내 조언을 듣고자 전화를 한 까닭은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아들의 유언 때문이라고 했다.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전신이 마비되어 이태 동안 집에서 누워서 살다가 두어 달 전에 세상을 떴는데, 죽으면서 아버지께 나를 만나 보라는 유언을 했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아들은 이태 전에 내게 무지막지한 폭력전화를 했던 그 청년이었다. 술 취한 상태로 내게 폭력전화를 하고 나서 더욱 흥분상태가 되어 오토바이를 끌고 나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한 달 전에 예견했던 김지하의 '빨갱이 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