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노동과세계 변백선
고 최강서씨가 한진중공업의 민주노조 탄압과 손배가압류를 규탄하며 목숨을 끊은 지 1개월이 다 되가고 있지만, 사측은 개인적인 죽음으로 매도하며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매일 조합원들과 함께 한진중공업지회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고 최강서씨 투쟁 26일 차인 지난 15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 농성 천막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났다. 김 지도위원은 "최강서 동지가 자신의 몸을 던져 만들어낸 틈을 최대한 벌려서 (투쟁 승리의) 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1년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 후 그동안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그동안 사측이 여러 번 약속을 어겼다. 노사 합의를 어긴 전력이 있어서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2011년 합의는 국회가 마련한 권고안이고, 그 권고안을 만들기까지 희망버스가 다섯 차례나 왔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수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았다. 또 조남호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기 때문에 그런 합의까지 어길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최소한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한진중공업 사측은 민주노조를 깨는데 총력 집중한 것 같다. 조남호 회장이 공개석상에서 경영정상화를 여러 차례 언급할 때 뒤에서는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2011년 11월 10일 노사 합의 시에는 경영정상화 내용을 약속하고 94명이 복직해서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무기한 휴업이나 이런 식이 아니었다. 합의 정신을 어긴 것이다. 그 이후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저는 크레인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이미 사측이 준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으니까 내려오자마자 그런 작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 해 10월 노조 선거에 출마한 김상욱 집행부를 사측이 밀었는데 차해도 집행부가 출범했다. 저들은 복수노조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현장에 어수선한 틈을 타서 복수노조를 만들고 강제휴업을 한 뒤 민주노조 탈퇴를 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다. 민주노조를 탈퇴한 사람들만 복귀할 수 있었다.
그것이 조합원들에게 실제적인 압력이 됐다. 지금은 공장에 들어가지도 못하지만 들어가 보면 도크가 다 비어있다.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조합원들 눈에 그런 게 보이니 실제 생존에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이미 4년 넘게 5년째 수주를 단 한 척도 안 받았다. 앞으로도 받을 것이라는 기약이 전혀 없고, 소문으로는 공장이 문을 닫는다고도 한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이 특수선에서는 기술적으로 뛰어나 경쟁력이 있으니 필리핀으로는 가져가지 못한다.
군함 부문도 한진이 최고 기술을 갖고 있다. 필리핀에는 댈 것도 아니고 국내 조선소도 못 따라온다. 이것만 살려서 진해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이 공장은 폐쇄할 수도 있다. 살아남는 인력 800명 중 1/3 정도 되는 이들이 상시적 불안에 놓여 있다.
이 노조를 탈퇴하고 저 노조로 간다는 것은 양심이나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의리의 문제도 아니다. 조합원들이 굉장히 미안해 한다. 저녁에 퇴근 선전전을 하면 복수노조를 포함해 우리 조합원 거의 100%가 먼저 인사를 한다. 복수노조 간부들만 빼고 거의 인사를 먼저 한다. 남아서 싸우는 민주노조 조합원들보다 복귀한 사람들이 더 불편할 것이다.
더구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최강서는 유서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돌아오라고 했다. 조합원들도 알고 있다. 저렇게 분열되면 더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 안다. 그렇지만 미래의 일보다 당장 내 목숨과 내 생존이 걸린 일이다.
며칠 전 한 50대 가장이 퇴직 후 이틀 만에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노동자에게 직장은 먹고사는 생존의 장을 떠나서 그들의 모든 것이다. 영혼까지 포함된 것이다. 어제 저녁에 문화제를 하는데 올해 정년퇴직한다는 아저씨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직장에 다닌 지 30년이 넘었다고 했다. 아침에 눈 뜨면 무조건 출근하는 일상이다. 휴직자들도 다 30년이 넘은 사람들인데 아침에 갈 데가 없어도 눈이 떠진다고 했다. 2003년 구조조정 때도 조합원들을 희망퇴직·명예퇴직으로 잘랐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작업복 입고 출근하는 일을 30년 넘게 해온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휴직을 한 상황에서 아침에 일어나 작업복을 입고 출근 준비를 하니 그걸 보는 가족들은 어떻겠는가. 미치는 것이다. 이 아저씨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사는 시간이 가족과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았다. 동료들과 같이 일하고, 점심 먹고, 담배 피고…. 그런 일상에 훨씬 익숙한 이들이다.
휴가라고 해서 집에 있으면 일주일 정도는 견디지만 그게 넘어가면 불안해진다. 공장을 떠나면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밥 나오고 옷 나오는 그런 것을 떠나서 여기서 일하며 자신이 인정받고 그런 것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배척 당하고 버려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와 영혼이 파괴되는 것과 같다. 자본은 그런 걸 모른다. 안다고 해도 그들에게 사람은 곧 돈이다. 공장을 돌려서 이윤을 내는 것만이 저들의 목적이다. 공장을 이전하거나 해외로 나가서 돈을 더 벌 수 있다고 하면 가차없이 하는 이들이다.
최강서를 비롯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잘렸다. 젊은 사람들이 노동운동 역사를 알고 노동운동 이념을 알겠는가. 제가 단식하기 전에 출근 시위를 1년 넘게 할 때도 저 사람들은 자신이 피켓을 들고 복직을 호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로 3000명 넘게 잘리고 23명이 죽을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우리 조합원들도 해고는 남의 일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해고 당하고 노동자들의 세계관이 흔들린 것이다.
최강서의 부인도, 누나도, 가족들도 모른다. 강서 누나가 '손배가압류 철회를 해야 하고 손배가압류 그걸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고 강서가 그랬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했다. '민주노조 사수,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1년을 투쟁하고 그리고 나서 노사합의 후 1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그 1년이 얼마나 길었겠는가. 제게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들에게는 당장 눈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였다. 그것은 굉장히 크게 다른 것이다. 다른 데서 알바를 하면서 노가다를 한 분도 많고, 그렇게 1년을 기다렸다.
2012년 11월 8일 인사발령이 나야 하는데 나지 않았다. 로비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지 두 시간 만에 발령장을 들고 왔다. 그 전에도 입사하는 과정에서 서류를 갖고 굴종적인 내용의 요구를 하고 그래서 논란이 심해 순조롭지 않았다.
인사발령이 난 게 11월 9일이고 12일에 모여서 버스 두 대를 나눠 타고 교육장에 갔다. 그때 모여서 사진도 찍고 파이팅을 외치며 웃었다. 그런데 4시간 만에, 강서 부인은 월급봉투에 3시간이라고 돼 있다고 한다. 3시간 만에 휴업이 떨어졌다. 투쟁하면서 몇 번을 배신당하고 몇 번을 용역깡패에 짓밟히고 경찰에 연행 당하며 힘들게 온 사람들에게 한 짓이다. 거기에 박근혜가 당선되는 결과까지 빚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 버린 그런 상황인 듯하다.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게 없었던 것 같다. 합의가 순조롭게 지켜질리 만무했지만, 사측은 노동조합의 소비조합과 신용조합·병원을 차례로 다 폐쇄했다. 1층부터 시작해서 차례차례로.
그들은 공장을 감옥처럼 만들었다. 그 안에 들어가면 담배 살 데도 없고, 커피 자판기도 없다. 막장에 다다른 듯한 절박감을 준다. 그렇게 사람들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갈 데가 있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여기 남은 사람들은 정말 오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 하나씩 빼앗아가는 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가 12월 26일까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노조 사무실을 비우라고 했고 21일 강서가 그렇게 됐다.
2003년 김주익·곽재규 두 사람의 열사가 생기면서 사측은 기업 이미지에 굉장히 타격을 받았다. 우리가 지어달라고도 안했는데 자기들이 나서서 복지관 건물을 지어줬다. 건물을 지어놓고 기자들을 불러 떡을 자르며 갈등과 대립의 역사가 아니고 노사 화합과 상생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사측은 그냥 단순한 건물 폐쇄인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두 사람 목숨을 바친 곳이다. 노사화합이니 하니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건물이다. 그 건물을 한층 한층 문을 잠근 것은 대화와 타협이 더 이상 없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다.
조합원은 물론 간부들도 출입을 못하게 한다. 관리자들이 수십명 나와서 문도 보강하고 공장을 교도소로 만들었다. 사측이 최근 한 일이라고는 문 공사·담 공사·CCTV 공사뿐이다. 사무장과 교선부장이 노조 사무실에 있다가 못 나왔는데 그건 이야기가 돼서 요 앞까지만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만드는 의도는 명백하다. 민주노조를 놔두지 않겠다는 뜻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영 정상화가 아닌 민주노조 파괴 음모다. 2년 간 그걸 치밀하게 사측이 진행해 온 것이다. 최강서가 그걸 막고 있는 형국이다."
"최강서는 구김살 없던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