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장으로 내정된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
권우성
게다가 그는 수원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하던 2005년에는 검찰에 골프장 예약을 부탁하기도 하고 대기업에 '송년회 협찬'을 요구하는가 하면 아파트 분양권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의혹까지 사고 있다. <한겨레> 15일자 기사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외부 강연 등 개인적인 일에 헌재 연구관을 동원하는 등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해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증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재산 형성 과정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인사청문특위에 따르면 이 후보자는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한 6년간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액이 같은 기간 전체 소득액과 비슷한 6억원으로 나타났다. 수입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한 셈이 된다. 16일자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2002~2003년쯤 차관급 대우를 받는 서울고법 부장 판사 시절 동료 판사들과 룸살롱에 출입해 후배 판사들에게 "검사들은 일상이니 '2차'(성매매)를 나가라"는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이밖에 이 후보자가 수원지법원장 재직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나 기소돼 수원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던 당시 한나라당 소속 수원시장에 대해 판사들의 반발을 묵살하고 법원 조정위원 자리를 계속 유지하게 했던 의혹도 제기됐다.
유신헌법 헌법소원 사건, 고의 지연 의혹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헌재 재판관 시절 유신헌법 관련 헌법소원 사건의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의혹이 무겁게 다가온다. <한겨레>가 15일 1면 '이동흡 '긴급조치 헌법소원' 주심때 헌재소장 재촉에도 평의·선고 미뤄'란 제목에서 복수의 헌법재판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그는 헌재 재판관 시절 유신헌법 제53조와 긴급조치 1·2·9호의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았을 당시, 고의적으로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2011년 10월 13일 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공개변론이 열린 뒤 지난해 9월 14일 퇴임할 때까지 사건을 헌재 재판관들의 회의인 평의에조차 넘기지 않았다. '더 검토할 것이 있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는 것이다. 공개변론 뒤 1년 안에 평의를 거쳐 선고까지 내리는 게 보통인데, 아예 평의에 넘기지 않아 다른 재판관들이 의견을 낼 수조차 없도록 했다는 것은 압권이다.
이처럼 개인의 자질과 도덕성에 문제가 심각한 사람을 독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헌재재판소장 자리에 앉히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박근혜 정권 출범을 앞두고 국민들 사이에는 아직도 박 당선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해 의심하는 눈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유신독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보편적인 국민 법 감정과 상식적 수준에 반한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사의 올바른 정리와 인식, 이에 대한 정당한 계승 없이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 기실, 박 당선인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켰던 5.16 쿠데타와 유신헌법에 대한 올바른 법적 판단은 과거사 정리는 물론 현대사 규명에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이 때문에 아직도 당선인이 과거사를 청산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박 당선인은 후보시절부터 인혁당 사건을 비롯한 유신독재시절의 암울한 과거사에 대해서만은 유독 모호한 태도를 취해 논란이 가중됐다.
우리 사회에는 40여년전 유신헌법의 초법적 조항에 따른 피해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여전히 권리구제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열린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유신헌법 53조 긴급조치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돼 있고 이 사건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어 헌재가 조속히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들은 "나치시대 내려진 판결에 대해 일괄적으로 무효를 선언한 독일의 입법례처럼 위헌적인 유신헌법에 기초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긴급조치에 근거해 내려진 판결의 효력을 일괄적으로 무효화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때문에 과거사 청산을 위해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무효화하는 국회 차원의 법이 제정돼야 하고,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선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선 초반부터 제기돼 왔다.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국감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제기한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 1·2호 등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사건이 헌재에 2년여 넘게 계류 중인 걸로 안다"며 "헌재가 아직도 이 사건을 결정하지 않는 데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유신헌법의 위헌 논란이 끝나기 전에 유신헌법과 관련된 헌법소원 사건의 주심을 맡았지만 고의적으로 평의와 선고를 미뤘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인물을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올린 박근혜 당선인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퇴임을 앞둔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이 "당파성이나 이념성이 치우친 사람은 헌법재판소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이동흡 반대' 입장을 밝힌 이유를 박근혜 당선인이 곱씹어 보길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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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량미달' 헌재소장 임명, 박근혜 의도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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