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숙박비'가 250만원... 뭐하는 곳이길래

태어나서 처음 도선선 수리 현장에 갔습니다

등록 2013.01.14 10:50수정 2013.01.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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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을 건조·수리하는 곳을 조선소(造船所)라 한다. 옛날 어른들은 배를 만들고 고친다고 해서 '뱃공장'이라 불렀다. 재미있는 것은 뱃공장 부근에서 30년을 살아온 사람도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봤다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 군산 째보선창이 고향인 기자도 마찬가지. 그런데 지난 10일, 배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처음 구경했다.


 해상에서 작업을 기다리는 금강호. 밧줄로 선체를 고정해놓고 있다.
해상에서 작업을 기다리는 금강호. 밧줄로 선체를 고정해놓고 있다. 조종안

위 사진은 고장 난 스크루를 수리받기 위해 전북 군산시 금암동 신진 조선소(대표 나동문) 앞 해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금강호(15톤)의 모습이다. 금강호 선명(船名)은 도선사(pilot)를 실어 나르는 도선선(pilot boat). 도선사는 항구에 입항할 외국의 중·대형 선박에 승선, 선장으로부터 업무를 인수받아 배를 부두에 안전하게 접안시키는 사람으로 '선로 안내인'으로도 불린다.

선체는 작지만, 새끼 호랑이처럼 위엄있어 보인다. 밀수를 단속하는 경비정처럼 빠르고 힘도 세게 생겼다. 승무원들이 배에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잔단다. 의식주 해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승무원은 선장을 포함해서 두 명. 방도 두 개나 있다고 한다. 방은 작아도 7~8명이 숙박할 수 있단다.

부릿지(bridge) 꼭대기에서 펄럭이는 분홍색 기(旗)가 눈길을 끈다. 나 대표 설명에 의하면 도선사를 상징하는 기라고 한다. 도선법에 도선선은 기를 달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도선선임을 알리기 위해 선체 외부를 흰색으로 마감하고, 측면에 검은색 영문으로 표시한 'PILOT'도 도선법 규정에 따른 표기란다.

고장 난 선박을 육지 선대로 올리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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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신호와 함께 작업이 시작됐다. 스위치를 켜자 윈치(자아틀)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밧줄이 도르래를 통해 선박에 엮인 동아줄을 잡아당긴다. 옛날에는 기름(구리스)을 발라서 사용했다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술이 좋아져 선대(船臺)의 받침대만 철거하면 내려가게 돼 있다고. 그래서 조선소 선대는 경사지게 설치한단다. 


도르래와 밧줄을 이용, 선대를 수면 아래로 내려보내 배 밑바닥에 고정하고 선체를 육지로 끌어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이날은 1시간가량 걸렸다. 모든 작업은 수신호로 이뤄지는데, 물속에 잠긴 선대를 배 밑바닥에 고정하는 작업을 한 번에 끝내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서너 차례 거쳤다.

바다 밑, 갯벌에도 육지의 윈치와 밧줄로 연결된 도르래가 묻혀 있다고 한다. 짠물에 쉽게 상하거나 녹슬지 않는지 궁금했다. 나 대표는 "700년 가까이 제 모습을 간직한 신안 해저 유물에서 알 수 있듯 도르래가 갯벌에 묻혀 있으면 산소가 통하지 않고, 개흙이 윤활유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간다"며 "일이 없는 날에도 밧줄을 연결해놓고 있다"고 귀띔했다.


기계도 사람이 조종하고, 신호도 손으로 이뤄지는 등 전통 방식 같다는 말에 나 대표는 지금도 중소형 조선소에서는 같은 방식으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배 톤수에 따라 도르래 크기와 개수 등이 달라진다고. 15톤 이하 작은 선박은 도르래 하나로도 가능하지만, 20톤 이상은 두 개, 중·대형은 5~6개, 선박용 크레인이 동원되는 배도 있다고 한다. 밧줄 굵기도 달라진다.

 어선에서 사용하던 마게. 모양이 수동식 윈치와 비슷하다.
어선에서 사용하던 마게. 모양이 수동식 윈치와 비슷하다. 조종안

나 대표는 "지금은 모든 기계가 전기 힘으로 움직이고, 선대 밑에 기차용 레일을 깔아놔 서너 명으로 작업이 가능하지만, 1970년대까지는 작은 배도 열 명이 달려들어 소가 연자방아 돌리듯 윈치를 손으로 돌렸으며, 그나마 3~4시간이 걸렸다"며 "철도 레일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통나무 두 개를 깔아 이용했고, 윈치도 어선의 '마게'처럼 세워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배가 해상에서 기다리는 이유는 썰물 때는 작업을 할 수가 없고, 밀물(滿潮)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 선대 양쪽에 꽂은 대나무 막대기는 선대가 물에 잠겼을 때 좌우대칭을 잡을 수 있도록 표시가 돼 주고, 노란 포대 속에는 톱밥이 들어 있다고 한다. 톱밥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스펀지 역할을 한다.

이대로 가면 소형 조선소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나 대표가 밧줄을 윈치로 통하는 밧줄을 정리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와 나 대표가 밧줄을 윈치로 통하는 밧줄을 정리하고 있다. 조종안

스크루가 고장 난 금강호를 조선소 선대로 올리는데 드는 비용은 250만 원(수리비 제외). 나 대표는 "한 번 육지로 올라오면 수리 기간이 보름에서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에 사람으로 치면 여관 숙박비에 해당한다"며 "수리를 마치고 내릴 때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해안은 남해안보다 간만의 차가 심해서 배를 육지로 올리는데 어려움이 많고, 그래서 인천·군산의 조선소들은 여수·부산에 비해 비용을 더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남해안 조선소들은 대부분 날짜를 따져 요금을 받아서 약속 기일을 넘기면 군산보다 비싸기 때문.

나 대표는 배를 육지로 끌어 올리는 일은 구경하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육지와 바다에 보이지 않는 시설투자가 적잖게 들어가고, 고난도의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며, 어쩌다 사고라도 나면 모두 변상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보험회사에서 보험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는 "배 밑 청소, 페인트칠 등 겨울에도 칼바람과 싸워야 하는 조선소 일은 소위 '3D 업종'으로 분류되지만, 운영의 묘미도 있다"며 "하지만, 기술을 배우겠다는 젊은이도 없고, 대형 조선소를 선호해서 이대로 가면 소형 조선소들은 하나씩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진조선소 #선박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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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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