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가 내뿜는 상쾌한 향기 속에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김혜란
구덕산 넉넉한 품으로 이끄는 숲길겨울 숲은 한적하고 고즈넉했다. 새의 지저귐이나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솔길을 덮고 있는 낙엽 밟는 소리만이 고요한 겨울 숲의 정적을 깼다. 날은 추웠지만, 짙푸르고 뾰족한 편백나무 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부드러웠다. 그 햇살을 받으며 숲을 아주 천천히 거닐었다. 숲길을 벗어나니 20분이 지나 있었다.
편백숲은 조그만 산책로지만, 산책길이 짧은 대신 숲길 끝에서 구덕산 정상을 오르는 길목을 만난다. 그 길목에서 400m를 올라가면 구덕산 정상에 이를 수 있다. 주위 경치를 둘러보다 보면 자연의 무한한 풍부함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편백숲길은 사람들의 발길을 또다시 구덕산의 품으로 이끈다.
구덕산은 부산 서구를 감싸고 있는 높이 565m의 산으로, 울창한 수림을 자랑한다. 특히나 봄이면 구덕산 능선 따라 피어나는 철쭉이 절경을 이룬다. 구덕산 북동쪽으로는 엄광산, 남서쪽으로는 시약산이 이어진다. 바로 이점이 많은 부산 시민이 구덕문화공원을 찾는 이유라고 숲을 안내한 부산 서구청 정성모 주무관이 말했다. 승학산, 엄광산, 시약산을 찾는 산행객이 산을 오가며 편백숲 길을 찾기 때문이다.
편백숲은 도심(남포동)과 15분 이내 거리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박물관과 식물원이 숲길과 연결되어 있어 풍부한 볼거리를 준다. 덕분에 연간 30만 명 이상이 이 공원을 찾는다.
봄, 가을이면 가족과 함께 문화시설을 이용하고, 편백숲에서 산림욕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단다. 정성모 주무관은 "편백숲 자체는 작지만, 문화시설과 산림휴양시설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수상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구덕산 중턱은 2004년 구덕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불법경작지였다고 한다. 이곳을 민간사업자가 위락시설로 개발하려고 했지만, 구청은 공원으로 가꾸어 시민들에게 선물했다. 대신 구덕산문화공원을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조성하여 더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게 했다. 2004년 교육역사관을 시작으로 민속생활관, 목석원예관 등이 매년 차례로 개관해 방문객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구덕문화공원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건, 2009년 편백숲이 조성되고 나서다. 2009년 희망근로사업과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편백숲길로 새롭게 태어났다. 정 주무관은 "편백은 인체에 이로운 피톤치드를 다량 방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책길로 가꾸어지지 않아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다"며 "편백나무 군락을 그대로 두는 것이 아까워, 많은 시민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산책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편백나무 숲을 벗어나서 걷다 보니 '교육역사관'이 나왔다. 교육역사관은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교육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관이다. 강기홍(77)씨는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은퇴 후 5년째 교육역사관에서 안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교육역사관에 전시된)자료들을 구하기 위해 8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대로 목민심서, 실제 조선시대 과거 시험지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 1000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 생활사 유물을 전시한 민속생활관, 자연학습장 기능을 갖춘 목석원예관 등이 갖추어져 학생들의 견학장소로도 훌륭하다.
화사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가깝고 친밀한 구덕산 편백숲. 구덕산이 품은 편백숲은 포근한 쉼터이자 사색의 공간으로 부산 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아름다운 숲을 보존해나가는 건 이제 시민의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