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주남마을에 있는 위령비. 1980년 5월 23일 11공수부대는 부상당한 청년 두 명을 주남마을 야산 중턱으로 끌고가 사살하고 암매장했다.
이주빈
주남마을 찾아가던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다. 높고 파란 겨울 하늘은 더욱 시리게 느껴졌다. 파란색이 원래 갖고 있는 외로움의 세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주남마을이 품고 있는 처절한 상처 때문이었을까.
주남마을은 '광주천 따라 걷기' 1구간에 속한다. 1구간은 동구 용연동 용연정수장에서 주남마을까지 이르는 길이다.
주남마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선 용연마을부터 소개하자. 용연(龍淵)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용연동의 옛 이름은 용솟골이다. 용이 사는 연못이 있었다는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용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은 전라도는 물론 경상도, 충청도 등지에도 많다. 물이 좋아 폭포가 있거나 계곡이 좋아 용연이란 이름이 붙여진 경우다.
신령스런 설화의 마을답게 용연마을에선 지난 2003년 5월에는 '한국만가 무속 제전'이 치러졌다. 이때 용연마을 주민들은 '용연마을 상여소리'를 들고 참가했다. 또 1970년대 무렵까지는 해마다 음력 정월 나흗날 오후 10시부터 오전 3시까지 당산제를 지냈다. 수령 470년의 귀목나무가 '할아버지 당산' 구실을 했다.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이 대개 그렇듯 용연동에도 '농악단'이 있었다.
하지만 '광역도시화'는 이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만들어버렸다. 용이 사는 연못 대신 정수장이 들어섰고, 대를 이어 불러왔던 상여소리 대신 갖가지 공사 소음이 마을을 시끌벅적 채우고 있다.
용연마을을 나와 광주 방향으로 한 시간 남짓 걷다 보면 주남마을이 있다. 주민 100여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어느 해 한 번이라도 이 마을을 피해 간 적 없다.
1980년 5월 23일, 11공수부대가 진을 친 주남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