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 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남소연
내가 생각하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욕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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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바뀌어야 한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은 선거 때마다 나온 말이었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각의 틀과 사물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일상화된 '변화'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보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로서의 안철수 현상은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라는 안철수의 발언에 농축돼 있다. 세상은 이미 낡은 보수·진보의 대립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대를 선도하고자 했다면 이 대립구도부터 깨뜨려야 했다.
상황을 단순화시켜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전통적인 보수의 패러다임은 안보와 성장이 주축이다. 전통적인 진보의 패러다임에서는 민주화와 분배가 안보와 성장에 각각 맞서는 대립항을 형성하고 있다. 안보는 민주화를 억누르는 데에 효과적인 핑계였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감행한 것도, 유신을 단행한 것도 명목상으로는 안보가 문제였다. 전두환이 광주를 도륙할 때도 '폭도'나 '불순좌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핑계를 내세웠다.
이런 폭압적인 독재에 맞설 때 안보와 민주는 서로가 상호배제적이어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내몰린다. 성장과 분배도 비슷하다. 민주화와 87년 체제, 그리고 그 체제가 남긴 패러다임에서는 상호배제와 양자택일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우리는 그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 만족스러울 만큼 과거청산이 이루어졌는가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보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과거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미래가 항상 우리를 기다려줄 만큼 친절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형식적이나마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안보와 민주화가 상호배제적으로 대립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안보와 민주화, 둘 다 하면 그게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성장과 분배, 그거 둘 다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NLL논란과 김대중의 '햇볕정책' 1997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은 좋은 벤치마킹의 사례이다. 평생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던 김대중이 남북화해정책인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햇볕정책을 제1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이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무력도발 응징은 물론 햇볕정책을 위한 논리적 전제조건인 측면도 있으나, 그와 함께 "김대중이 당선되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항간의 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실제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이야 얼마 없었겠지만 수십 년 동안 빨간색 딱지가 붙은 김대중에 대한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상당수였음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김대중의 이 전제조건은 말로 끝나지 않고 전략무기 도입과 해공군력 강화로도 이어졌다. 대양해군 건설을 위해 이지스함 도입을 결정한 것도 이때였다. 공중요격으로부터 함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은 이지스함은 최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그 항로를 추적하는 등 평시에도 대공방어 관련 임무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대중을 계승한 노무현은 '군국주의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략무기 도입과 자주국방에 관심이 높았다.
이번 대선에서 NLL관련 논란이 증폭될 때마다 나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떠올랐다. 왜 문재인 쪽에서는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미리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정책과 공약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예를 들어 NLL을 확고히 사수하겠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한국의 현실에서는 그 말이라는 것도 사실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해야만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과의 재래무기 군축협상을 통해 북한의 서해안 해안포나 수도권을 위협하는 서부전선의 장사정포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든지 하는 보다 적극적인 안보솔루션이 필요했다. 이런 노력은 노무현-김정일의 10.4 선언에 담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현실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은 진보라고 해서 안보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안보의 개념은 단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안보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