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마지막 원시지대, 얼음산 맥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
박준기
"도대체 알래스카에 무엇이 있소?"
알래스카···· 화려하지도 감각적이지도 않은 그곳에는 사실 별것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영혼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짧은 언변을 무릅쓰고 그 고독의 완성을 위한 종착지로 주저없이 알래스카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 본문 가운데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퍼펙트 월드>에서 주인공 버치는 탈옥 후 필립이라는 꼬마를 인질로 잡고 거침없이 탈주를 계속한다. 텍사스 수사팀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그의 행방을 쫓지만, 알아낸 것은 탈옥수가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버치의 목적지는 알래스카였다.
감독은 왜 알래스카를 탈옥수 버치의 목적지로 그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알래스카라는 땅이 버치처럼 삶의 끝에 다다른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비현실적이고 막막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끊임없이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키는 시원(始原)의 땅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버치는 그곳에서라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꿈에 유혹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알래스카는 원래 러시아령이었으나, 1867년 3월 29일 720만 달러의 헐값에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지금이야 알래스카에 황금과 석유 등 무한한 천연자원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귀한 땅이 되었지만, 당시 재정난에 허덕이던 러시아는 쓸모없이 얼음만 가득한 땅을 팔아치운 성공적인 비즈니스에 파티까지 벌였고, 얼음 땅을 매입한 국무 장관 스워드는 "국무장관이 아이스박스를 돈 주고 샀다"는 언론의 뭇매와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그러한 역사의 기록이나 천연자원의 보고로서의 가치 등의 사실보다도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원시지대라는 미학적 관심으로 인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알래스카는 땅 주인 미국 사람들조차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다. 그것은 단지 관심이 덜하다든지 혹은 알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 대해 무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알래스카는 아직 인간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조용한 대지의 느낌,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아직도 거대한 대자연과 이음동의어 격으로 다가오는 알래스카는 단지 탈옥수 버치만이 동경하는 곳은 아닐 것이다.
몇 달씩 텐트를 치며 북한산을 올랐고, 덕유산 꼭대기의 산장을 지키며 등산객들을 구조하기도 하고 설악에 단풍이 들면 로프를 메고 천화대 능선을 밟던 저자는 어느 날 넓은 땅떵이가 보고 싶어 태평양을 건너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 알프스, 히말라야까지 드나 들더니 결국 알래스카에 있는 6194미터의 얼음산 매킨리(본래 이름은 디날리(Denali)로 아사바스칸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산)까지 찾아가게 된다.
당연하겠지만 이런 삶을 사는 저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당신은 왜 그렇게 사시오?"란다. 탐험에 나서는 이들은 죽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특별하다는 말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고독한 사람들일 뿐··· 저자의 답변이다. 화려한 도시보단 광막하고 황량한 초원이나 사막의 풍경이 더 마음에 다가오는 나도 알 것 같기도 하다.
위대한 모험과 도전의 길, 아이디타로드(Iditar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