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씨 사진을 들어보이며 박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유성호
1975년의 풍경을 기억한다.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이 점점 거세어지자 자신이 자신을 뽑은 종신대통령 박정희는 1975년 2월 12일 유신헌법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한다. 이때도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공세만 있었고, 반대의견 개진은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 그 결과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라는 기록이 나왔다.
공무원 동원에는 학교의 교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사들은 가정방문 형식으로 학부모들을 찾아다니며 투표를 하도록 유도했고, 찬성을 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나는 그런 일들을 하고 다닌 교사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앳된 처녀 교사들도 있었다. 당시 내 바로 아래 누이동생도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는 특히 처녀 교사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보곤 했다. 교사 본연의 일이 아닌 그런 일을 하면서 그들이 수치심과 모멸감에 시달리지는 않나 걱정을 했다.
그때로부터 40년 가까이 흐른 오늘, 당시의 앳된 처녀 교사들은 대부분 환갑을 넘긴 나이로 지금도 내 눈 앞에 있다. 교장도 있고, 교감도 있고, 평교사들도 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그들에게 수치심이나 모멸감 따위는 아예 없었던 듯싶다. 유신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또 유신교육을 잘 전파했던 '유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들에게서 '불쌍한 박근혜'와 '싸가지 없는 이정희' 론을 들으며 어느 정도 가방끈을 가진 사람들도 무지몽매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암울한 절망감을 안아야 했다.
유신세대의 대표적인 특징 한 가지는 '종북론'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다. 유신의 최대 명분은 '반공'이었다. 유신교육은 반공교육이었고, 반공교육은 곧 유신교육이었다. 오늘의 종북론은 유신교육의 소산임이 명백하다. 오늘의 종북론은 과거의 유신만큼이나 광포하고 강압적이며 살벌하다.
과거의 친일세력이나 유신독재를 비판해도 '종북'이라고 하고, 오늘의 이명박 정권의 악정과 실정을 말해도 종북이라고 매도한다. '평화통일'을 입에 담아도 종북이라고 하고, 정의와 인권이라는 말에도 종북을 들이댄다. 그만큼 종북은 무소불위의 형태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입당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빨갱이 되려느냐"는 말까지 하겠는가. 빨간 옷은 괜찮지만 노란 목도리를 착용해도 좌빨이라는 소리를 한다.
종북이라는 주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국가안보'가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줄 안다. 안보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가치로 여긴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여타 가치들은 안보를 저해하는 것으로 여기며 무조건 종북 혐의를 들이대고 본다.
이런 현상은 요즘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대략 '잃어버린 10년'을 고창할 때부터 함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유신세대를 한껏 결속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위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 집안싸움 할 때가 아니다대선 이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세차게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멘붕(멘탈붕괴)'을 겪는 유권자들 다수가 민주당의 전략 부재를 주요 패인으로 꼽는다. 전략 부재를 증명하는 논거들이 봇물을 이룰 정도였다.
대부분은 고답적이고 학술적인 논거들이었다. 나같이 직접 생활현장에서 발로 뛴 사람들이 피부로 접하고 느낀 현상들의 맥을 짚어보는 논거들은 의외로 적었다. 민주당은 우선 '유신세대'들에 대한 심층적인 대책이 없었다. 40대 이하 젊은 층의 폭발하는 에너지 쪽으로만 너무 기대고 과신을 했다. 한국인의 전반적인 심성, 대중의 속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여러 가지 돌출 현상들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