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사진은 지난 19일 개표 당시.
유성호
모두 아닙니다. 저는 물론이고 제 가족이나 친척이 박정희 시절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거나 재산을 빼앗긴 적도 없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슴 저리게 좋아하는 정도의 '노빠'도 아닙니다.
5년여 동안 파탄이 날 대로 나서 더 이상 내려갈 것도 없는 남북 관계는 국내외 훈수꾼들의 압력에 의해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달래면서 가자'는 쪽으로 흐를 게 빤해 보이고, 국제경제와 밀접하게 연동이 돼 있는 국내 경제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기 정도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분배나 복지·교육은 중층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구조적인 문제라서 5년 안에 그 무슨 큰 성과를 기대하기에는 누가 손을 대더라도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수십 년을 기다렸다 수만 리를 달려가 투표한 재외선거에서 보셨다시피 재외동포들은 본국에서 크게 혜택을 주지 않아도 고국을 걱정하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할 만큼 의식이 성숙해져 있습니다.
저는 정치 허무주의를 내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들이대며 '누가 해도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뭣 때문에 박근혜는 안 된다는 것이냐고요?
단 한 가지, 국민적 자존심 때문이고 '역사 바로 세우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국내에서나 국외에서나 '쪽팔리는 역사'를 사는 '2등 국민', 아니 '하등 국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는 말이지요.
외국에 아무리 현대차를 많이 팔아도, 아무리 삼성 전자제품이 인기가 있어도, 걸그룹이나 싸이가 엄청난 군중을 몰고 다녀도 어쩌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한국 소식을 통해 '독재자의 딸'이라는 단어가 사용돼 우롱을 당하는 역사를 사는 국민은 불행한 국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거 전후에 외국 언론매체에서 박근혜 후보를 가리켜 '독재자의 딸'이란 레테르를 붙여 보도한 것을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그러려니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이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아도 '졸부'라는 손가락질을 당하는 부자가 있는 것처럼 "너희가 요새 밥술깨나 뜬다고 난리인데, 희대의 독재자의 딸을 다시 대통령으로 삼으려 하다니… 아직 미개국 아닌가"라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걸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이 '스트롱맨의 딸'(strongman's daughter)이라는 표현을 두고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강력한 지도자' 또는 '실력자의 딸' 등으로 해석한 것에 당황한 미국 언론은 해당 지면 인터넷 판에 '독재자의 딸'(dictator's daughter)이라고 제목을 바로잡았습니다. 유럽의 언론 역시 박근혜 당선인을 '독재자의 딸'로 명기했습니다. 이는 나라 밖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것의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했으면 국가 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 편집국 기자들이 '실력자의 딸'이라고 번역한 자사 정치부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을까요.
'밥맛 나게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