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가진 해단식에서 울먹이는 캠프 관계자들을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다.
남소연
페북 등에 이런 제 심정을 적어 놓으니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이 말합니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고 정말 세상이 달라질 것 같으냐"는 말입니다. 그 분들의 지적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문재인 후보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솔직히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적어도 한가지 기대는 있었습니다. 지난 5년간 현 정부하에서 벌어졌던 여러 비상식적인 일들은 중단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무모한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과 경찰 6명이 죽는 참상을 일으키고도 반성하지 않는 권력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한 국민 다수의 뜻과 상관없이 밀어붙인 '4대강사업'과 이로 인해 물은 많으나 가뭄에 시달리는가 하면 막힌 물 흐름으로 식수원이 녹조로 가득찬 이른바 '녹조 라떼'라는 신조어가 회자되는 그런 불통의 시대는 끝나기를 희망했습니다.
흔히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문재인 후보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었습니다. 이같은 문제를 상식적인 방향에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 '야권단일후보 문재인의 당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매달렸던 것입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가 그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가 그랬습니다. 삶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이 땅의 '비정규직 문제' 해법에 대한 것도 그랬고 37년만에 나타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사인 의혹 규명' 역시 이번 기회에 반드시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군 당국의 자살 발표에 동의할 수 없다며 20년 이상 아들의 장례를 미루고 있는 '군 의문사 유족의 한'도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대선기간 내내 저는 이 문제의 해결을 SNS 상에서 언급했고 지난 12월 10일, 세계 인권선언기념일에 문재인 후보가 '군사 옴브즈만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거기에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자신이 당선되면 반드시 군 의문사 유족의 한을 풀어주겠다는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저는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기대와 바람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위대했지만 결국 선거에서 패배한 48%의 지지 앞에서 제가 절망하는 이유였습니다. 다 얻었다고 여겼다가 한순간에 터져버린 상실과 허탈감은 그래서 잠들 수 없는 이른바 '멘붕의 시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망의 끈 놓아버린 죽음, 너무 미안하다 제가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활동가로 일할 당시 어떤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새로 신자가 된 사람에게 기도를 많이 하라고 하면 처음엔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한다고 했습니다.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고, 우리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주고, 우리 아들 공부 잘하게 해주고, 내 남편 승진 시켜달라고 하는 등등의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기도의 내용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나보다 우리를 위해, 그리고 타인과 이웃을 위한 기도가 더 많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종교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지는 올바른 자세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 역시 개인의 이익보다 타인과 사회를 위해 무엇이 더 옳고 정의로운가에 대한 관심으로 삶이 바뀌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투표는 그러한 차원에서 '또 다른 기도'였습니다.
이번에 투표한 이들 역시 모두 그러했을 것입니다. 제각각 다른 목적과 생각으로 출발 지점은 달랐겠지만 '48%에 속한 사람'이든 '51%에 속한 사람'이든 나름의 충심으로 이 나라를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에 투표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나라가 '종북 좌파에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자기 확신으로 투표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더 이상 불통과 독선의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투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한쪽은 환호하고 다른 한쪽은 저처럼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버렸습니다. 참담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이들 노동자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미안해 하고 안타까워합니다. 함께 살자며 호소했지만 연이어 들려오는 비보에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답해 줄 희망의 말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당 해고'와 '비정규직 차별', 그리고 이를 항의하기 위한 파업으로 인한 '사측의 재산 가압류'와 생활고 문제로 끝내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이 죽음 앞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요.
25일, 노회찬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며칠전 자살한 울산 전 현대중공업 비정규 노동자 이운남씨의 영결식에 가기 위해 울산행 심야 고속버스를 타자 마자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을 듣습니다. 멈춰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살아서 싸워야합니다. 제발!"이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또 다른 절망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