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대
변종만
부용대는 해발 64m의 절벽이다. 화천서원 옆으로 경사가 급하지 않아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소나무와 갈참나무가 섞여 있는 숲길을 250여m 걸으면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용대의 정상에 선다. 이곳은 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로 초가집과 기와집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댄 하회마을과 마을을 휘감아 도는 물길이 한 폭의 동양화다.
처음의 지명은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을 뜻하는 '북애'였는데 하회마을의 생김새 때문에 중국 고사에서 연꽃을 뜻하는 부용을 따와 '부용대'가 되었다.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물가의 좌우에 화천서원과 옥연정사, 겸암정사가 자리하고 있어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한다.
하회마을은 류성룡 등 고관들을 많이 배출한 양반고을로 유교문화를 고수하며 자연경관과 어우러진다. 섬처럼 생긴 지형 덕분에 임진왜란의 피해가 없어 전래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하회탈 및 병산탈의 예술적 가치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며 유명해졌고, 2010년에는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풍산평야의 기름진 땅, 마을을 휘감아 도는 물길,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 등 마을의 위치가 풍수지리의 원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연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명당이다. 마을은 남북 방향의 큰 길을 경계로 아래쪽은 남촌, 위쪽은 북촌으로 구분한다.
바깥마당에 엘리자베스2세의 방문기념 식수가 있는 충효당(보물 제414호)은 서애 류성룡의 사후에 지은 집으로 서애종택이라 부른다. 충효당 내의 영모각에 서애선생의 귀중한 저서와 유품 등이 전시되고 있다. 염행당(중요민속자료 제90호)은 충효당과 더불어 하회마을의 남쪽 사대부 가옥을 대표하는 남촌댁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소실되었다.
양진당(보물 제306호)은 풍산 류씨의 대종가로 사랑채에 '입암고택' 현판이 걸려있고, 입암 류중영 선생의 호를 따서 입암고택이라 부른다. 고려말과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이 섞여있는 99칸 중 53칸만 남아있다. 화경당(중요민속자료 제84호)은 양진당과 더불어 하회마을의 북쪽 사대부 가옥을 대표하는 북촌댁으로 사랑채, 안채, 별당채, 사당,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하회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집이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흙담길을 따라 빈연정사, 만송정 솔숲, 나루터, 삼신당 신목 등을 돌아보면 하회마을의 멋진 풍경과 함께 후손들이 전통을 지켜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빈연정사(중요민속자료 제86호)는 겸암 류운룡이 세워 서재로 사용하던 곳이다. 민속놀이 마당과 만송정 솔숲이 가까이에 있고, 화천 건너편의 부용대와 겸암정사가 바로 눈앞이다. 노송 100여 그루가 자태를 뽐내는 만송정 솔숲(천연기념물 제473호)을 지나고 너른 모래사장을 따라 나루터로 가면 부용대와 옥연정사가 물길 건너편에 있다.
마을의 중앙에 위치한 삼신당은 대보름날 동제가 열리고, 하회 별신굿 놀이에서 탈놀이 춤판이 가장 먼저 행해지던 곳이다. 수령 600년이 넘는 노거수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신목으로 잘못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는 속설이 있어 둘레에 소원지가 가득 매달려 있다.